선교의 기초는 하나님을 창조자로 인정할 필요하다. 이제 우리들의 눈을 아브라함에게 돌려 보자. 아브라함을 통해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선교를 이루시는 방법을 보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모든 족속’이었던 70족속(창10장,11장) 가운데서 불러내시어 이들 족속들에게 복의 근원이 되게 하셨다(창12:3).

창세기 11장에서 하나님은 모든 족속을 이 땅 위에 흩으신다. 그리고 아브라함 안에서 이 축복을 통해 그들을 함께 불러 모으신다. 우리 모두는 이 축복이 아브라함의 씨(갈3:16)인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사실을 알고 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누구든지 한 아버지인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것이다(롬4:11,16~17). 지난 글에서 보았듯, 창조에 있어 우리의 공통된 조상은 아담이지만, 믿음에 있어 우리의 조상은 아브라함인 것이다. 다시 말해 세상을 향한 복의 근원이 되라는 부르심은 이제 우리의 것이다. 우리는 믿음을 통해 아브라함의 자손인 이스라엘이 되었다.

이사야 49:1~6을 보면 이것이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을 이방의 빛(49:6)으로 부르셨다. 그 종은 누구인가? 3절은 그것이 이스라엘임을 말해준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듯 이스라엘은 여러모로 빛이 되는 데 실패하지 않았는가. 종의 역할은 종국에는 참 이스라엘이신 메시야 예수님에 의해 성취되었다. 따라서 4~6절은 더 이상 이스라엘에 관해 말하지 않고 예수님에 대해 말하고 있다(눅2:32, 마12:18~21과 비교해 보라). 그럼 이제 바울이 이사야 49:6을 인용하고 있는 사도행전 13:46~47을 보자. 여기에서 이방인의 빛은 누구인가? 이스라엘도, 예수님도, 바울도 아니다. 바울이 어떻게 예수님께 대한 예언을 자신에게 적용시킬 수 있을까? 단 한 가지 설명만이 가능하다. 예수께서는 이스라엘(아브라함)을 향한 부르심을 이제 신약의 교회를 통해 이루고 계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이방을 향한 빛이 되길 원하신다. 이 자리에서는 이스라엘이 모든 족속을 위한 복의 근원이 되고, 이방을 향한 빛으로의 다른 방법들을 살피면서 우리들에게 적용해 보기로 하자.

당신의 백성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
하나님의 백성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세상에 드러내셨다. 왜 그분께서 애굽의 바로를 심판하셨는가? “내 이름이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려 하였음이라(출9:16).”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복을 주시고 그 얼굴빛으로 우리에게 비취사 주의 도를 땅 위에 주의 구원을 만방 중에 알리소서(시67:1~2).” 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바벨론에서 구해 주셨는가? “내가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로 인하여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열국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겔36:23).” 그렇다면 우리의 교회의 역사를 총해서는 세상이 하나님의 성품을 얼마나 더 알 수 있을 것인가?

시온으로 오라 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
이스라엘은 이방인들을 시온으로 부르셔서 율법을 배우게 하셨다(사2:1~4, 60:1~3). 시온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 가운데 거하시는 처소였다. 이사야11:10을 통해 우리들은 시온의 예수님, 임마누엘, 우리 가운데서 거하시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마11:28~29)”고 말씀하셨다. 시온, 즉 에수께로 오라는 부르심은 신약에서 역시 동일하다(히12:22~24를 읽어 보라). 우리들은 예수께 나오는 것을 각종의 법과 규제로 매우 어려운 것으로 만들지는 않았는가? 우리들이 제거해야 할 장애물들은 없는가? (참고: 많은 선교학 도서들이 구약의 선교의 부르심은 “오라”는 것에 강조를 두고 있고, 반면 신약에서는 “가라”고 강조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차이점이 너무 강조된다는 생각이 든다. “오라”는 부르심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 “가라”는 부르심은 믿는 자들에게 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구약이나 신약이나 마찬가지이다.)

증인이 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
“너희는 내 증인이다”라고 하나님께서는 거듭해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다(사43:10,12,44:8).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열방에 선포해야만 했으나 과연 그들은 그렇게 하였는가? 하나님은 우선 경배로 그들을 부르신다. 시편은 이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너희 만민들아 손바닥을 치고 즐거운 소리로 하나님께 외칠지어다(시47:1).” 또한 시편 18:49/96:1,7,8/117… 등도 보라. 경배란 것은 우리의 증거의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둘째로 심판에 대한 경고가 있다. 물론 요나가 좋은 예가 된다. 그러나 나훔도 니느웨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고, 오바댜는 에돔을, 사13~23과 암1~2도 경고를 담고 있다. 하나님의 심판을 안다면 우리들이 선교에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스라엘의 증거가 대부분 미약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포로가 되게 하셨다. 그리고 이 시기를 통해 이스라엘의 증거는 가장 강력해졌다. 다니엘과 에스더가 그 예이다. 아울러 렘29:1~7도 읽어 보라.

외인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
이스라엘은 그들 가운데 거하는 나그네들에게 하나님의 긍휼을 보여줄 책임이 있었다. 사랑을 베풀고 이방인들에게 정을 나누었을 때 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매력을 느끼고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가 있었다(출12:48,49/fp19:34/겔47:22,23…). 마찬가지로 우리들은 이 땅에 와 있는 중국인, 네팔인 필리핀인…들에게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그들과 함께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가 아니겠는가?

이 글을 통해 보았듯이 예수님을 통한 부르심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주어졌다. 우리들은 순종하고 있는가? 아니면 이스라엘이 그랬듯 실패하고 있지는 않은가?.♡

(from 선교한국, 하의진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