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이맘, 알 마흐디를 숭배하는 시아 이슬람의 큰 특징은 죽음의 종교라는 사실이다. 죽은 이맘들을 숭배하고, 그들의 무덤을 순례하며 추모함으로 자신의 신앙심을 표현한다. 가장 큰 종교적 절기가 후세인의 순교를 애통해 하며 불의에 대한 저항 정신을 기념하는 아슈라라는 절기일 뿐만 아니라, 시아 이슬람(열두 이맘파)의 종주국인 이란의 유명한 모스크는 대부분이 이맘의 무덤이거나 친인척의 무덤과 함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현재 무슬림들의 정파별 분포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시아 무슬림들은 이슬람 역사속에서 늘 박해 받는 소수파였다. 그들의 믿음과 종교적 관행들을 마음대로 표현할 수 없었으며 늘 핍박의 개종의 대상이었다. 이들은 자신의 암울한 현실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중재자 이맘의 무덤을 다니면서 자신들의 현실적 아픔과 동일한 핍박으로 죽은 예언자 혈통의 이맘의 아픔과 동일시하며 함께 애통해 하고 아파한다. 또한 신과 인간의 중재자인 그들을 섬기며 신성시 하는 것을 통해 신으로부터 복과 함께 새로운 세상으로 변화를 구한다.

이 변화의 핵심은 숨겨진 마지막 12번째 이맘인 마흐디의 재출현이다. 이 재림 사상은 시아 이슬람에서 종말론적 세계관의 핵심이다. 인도자라 불리는 무함마드 알-문타자르 (알-마흐디)에 대한 역사는 신비롭고 기적적인 모습을 띤다. A.D 868년에 태어난 알-마흐디는 아버지이자 11대 이맘인 하산 알-아스카리가 자신이 7살 되던 해(A.D 874년)에 죽으면서 12대 이맘으로 등극하고, 바로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고 전해진다. 시아 무슬림들은 그가 현재 이라크 사마라에 있는 모스크 아래의 동굴에 스스로 숨었으며, 이 동굴은 밥 알-가이바 혹은 “은폐의 문”으로 불리는 문에 의해 봉인 되었다고 믿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이곳 사마라의 모스크는 시아 무슬림들에게 가장 성스러운 장소 중에 한곳이며, 지금도 신실한 무슬림들은 여기에 모여서 12번째 이맘이 속히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기도한다.

숨겨진 이맘에 관한 중심 교리는 은폐와 재림의 원리이다. 은폐에 대한 믿음은 신이 무함마드 알-마흐디의 목숨을 보전시키기 위해서 사람들의 눈에서 숨겼다는 것을 믿는 믿음이다. 순니 무슬림의 계속되는 박해와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으며, 신은 그가 없어진 874년 이후로 그의 생명을 계속 보호하고 있다. 그리고 결국에는 신이 마흐디를 세상에 다시 보낼 것이고, 인간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 재림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은폐는 소은폐기와 대은폐기라는 두 단계로 나뉘어져 있다. 소은폐기 동안은 그의 대리자를 통해서 인간과 지속적인 의사소통을 하였다. 단지 몸만 숨겨진 상태에서 영적인 지도력이나 빛으로 인도하는 리더쉽 등은 그의 대리자들을 통해서 그대로 행사 되었다.이 기간은 4명의 대리자를 거치면서 70여년간 지속 되었다. 그러나 순니무슬림 정권의 위협이 심해지면서, 은폐의 단계는 대은폐기로 들어가고, 지금에 이르고 있다. 대은폐기가 되면서 인간과 직접적인 의사소통은 없어졌지만 여전히 영적 리더로서의 지위를 가진다. 하지만 이 시기는 무슬림들의 입장에서는 영적으로 비극적 시기이다. 12번째 이맘은 세상 빛의 중심이었지만 이 은폐기는 이 불을 가리고 있는 인간에게는 암흑기를 의미한다.

시아의 세계관으로는 비극적인 시기이자이맘을 그리워하는 시기이다. 시아 무슬림들은 이들을 구원으로 인도할 마지막 이맘이 속히 오기를 지속적으로 갈망한다. 그러나 숨은 이맘은 결국에 그의 은폐에서 벗어나 세상에 나타날 것으로 믿는다. 그의 나타남은 신실한 신자들에게는 미래에 일어날 가장 중요한 사건이다. 이 귀환은 세상 말기에 마지막 심판이 행해지기 직전에 올 것으로 예상한다. 이 귀환에서 이맘 마흐디는 악을 심판하는 정의의 군대의 선두에 서서, 악에 대한 모든 전쟁에서 승리를 거둘 것이고, 그 후 그는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이슬람 제국을 건설해서 몇 년간 그 나라를 다스릴 것이고 그 후 자연사 한다고 기록되고 있다. 이때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이맘 마흐디가 오기전에 예수 그리스도가 미리 와서 이맘 마흐디를 돕는 다는 이론이다.

사실 마흐디라는 말은 꾸란에서는 언급도 되지 않았던 말이다. 시아 이슬람에서 쓰는 하디스(무함마드의 언행을 기록함)에도 4번 정도 언급이 되었을 뿐이다. 그럼 어떻게 이런 종말론이 구체화 되었을까? 그것은 이슬람 이전에 아라비아 지역에 있던 유대교와 기독교의 종말론과 메시아관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 많은 학자들의 의견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심판의 사상이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또한 페르시아 지역의 특수성을 생각할 수 있다. 조로아스터교의 종말론과 페르시아 지역에서 번성했던 영지주의의 영향등으로 그들의 종말론을 구체화해 해 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A.D 940년 이후 지금까지를 ‘대은폐기’로 부르고 있다. ‘대은폐기’ 동안은 직접적으로 마흐디와 의사소통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이슬람의 가르침을 상세히 알고 있는 한 무리의 고위 성직자들이 지도권을 행사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으로 보고 있다. 이 사상은 후에 이란의 호메이니에 의해 벨리야테 파키(Velayat-e-Faqih)-이슬람 법학자 통치론-로 구체화 되었고, 1979년 혁명을 통해 지금의 이란의 정부 형태인 발전 시켰다.

새로운 시대를 열것이라는 희망을 심어 주는 마흐디즘은 또한 많은 나라에서 혁명의 단초를 제공하였다. 이슬람 역사 속에서 순니파에 대항하여 일어났던 많은 반란들은 카르발라 사건의 후세인의 저항 정신과 마지막 이맘의 재림에 대한 이론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실제 19세기 후반에는 수단에서는 무함마드 아흐마드라는 사람이 구세주 마흐디를 칭하며 반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그는 1881년 이집트의 지배에 반항하여 반란을 일으켰고 수차례의 승리를 통해 1898년 까지 실제 마흐디 국가를 수립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