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안에서 창조는 둘째 아담으로 완성되고, 이스라엘은 메시야를 발견하게 된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들은 선교의 가장 깊은 뜻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들은 이 글에서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선교사였던 그리스도께 초점을 맞추어 보자.

예수님의 선교, 우리의 선교
예수님의 선교를 살펴보는 일은 단순한 지적인 유희가 아니라, 우리도 따라야 하는 과업을 연구하는 일이다. 요한복음20:21에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고 하셨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사역은 승천하심으로 종결된 것이 아니라 당신의 교회인 여러분들과 본인을 통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바울도 예수님을 향한 예언을 자신에게 적용시켰다. ‘내가 너를 이방의 빚을 삼아…’(행13:47). 이 말씀은 이사야49:6에 나오는 예수님을 향한 예언이다. 우리의 세사에서
예수님의 손과 발, 입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특권인가!

예수님의 선교는 무엇이었는가?
마4:23은 예수님의 사역을 아름답게 요약해 놓는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오늘날의 말로 한다면 예수님께서 제자훈련, 전도, 사회참여에 깊이 관여하셨다고 할 수 있다. 진정한 총체적 선교가 아닌가! 그분은 전도를 토해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셨고, 그들의 지성과 삶과 공동체에 제자훈련을 통해 말씀하셨고, 사회적 관심을 토해 그들의 몸과 사회를 어루만지셨다. 이 모든 것의 핵심이 천국의 복음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의 모든 영역을 다스리셔야 한다!

지상명령
따라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명령이 이 세 영역을 포괄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마태는 예수님의 제자훈련 사역을 강조했다.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마28:19-20)라고 말한 선교 명령은 바로 그 같은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다. 마가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주로 전도와 병자들을 고치시는 것에 관심을 갖고 계심을 보여준다. 여기서도 선교명령은 동일하다. ‘복음을 전파하라…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쫒아내며,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16:15-18).누가는 예수님의 복음을 선포하는 전도사역에 강조를 두었다.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 전파될 것이라… 너희 가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눅24:47,48). 따라서 우리는 주와 똑같은 일을 해야 한다. 만약 우리들이 네 개의 복음서를 함께 두고 본다면 예수님과 우리의 사역이 아름다운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전도
전도는 국내에서 하는 것이고 선교는 해외에서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잘 못된 정의이다. 전도는 선교의 일부인 것이다. 우리가 설펴 보았듯, 선교는 전도 보다 훨씬 폭넓은 개념이다. 요즘은 선교가(따라서 전도도)국내와 해외에서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 세계의 대부분의 나라들은 선교사를 받아들이는 한편 선교사를 보내고 있다. 선교지와 파송국이란 구분이 실제로 있지도 않고, 성경적이지도 않은 것이다. 우리들은 둘 다이다.

제자훈련
이 역시 예수님의 사역에서 살펴본 것처럼 전도와 떨어질 수 없다. 선교의 주된 문제는 ‘미전도 종족’뿐이 아니라, 성숙한 지도력과 그리스도인이 빠진 교회도 문제이다. 요즈음의 내 개인적인 관심은 우리가 미전도 종족의 전도에 너무 많은 강조를 하다 보니 선교사들의 제자훈련을 완전히 간과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선교 훈련들은 개척선교사역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가르치는 기술을 가진 선교사 후보생은 개척선교사역의 기술을 가진 후보생보다 경시되는 경향이 있다. 예수님의 사역을 보건대 3년간 이스라엘 전체를 복음화 하는 것보다 열두제자를 훈련하시는 일에 더 큰 중요성을 두신 것으로 보인다. 주님은 열둘을 훈련하시어 그들이 나아가 전도의 일을 감당케 하셨다. 소위 ‘선교지’라고 불리는 곳의 교회를 훈련하여 그들이 미전도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우리가 그 일을 하려고 애쓰는 것 보다 더욱 전략적이지 않을까? 실상이 이처럼 간단히지만은 않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제자 훈련에 대한 강조를 빼 놓고 미전도 종족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예수님의 선교방법이 아닌 것이다.

사회적 관심
사회적인 도움 역시 전도, 제자도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이 세 가지는 함께 가는 것이다. 의료사역, 농업개발 등은 닫힌 국가에 비자를 얻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이 같은 일을 하셨다. 그들의 영혼뿐 아니라 육신도 체휼하셨다.(마14:14). 요한복음에서는 이것을 ‘표적’이리고 부르고 있다. (요20:30)하나님나라가 완성될 때 우리의 영혼과 몸을 당신께서 부활 가운데 고치실 것을 말해주는 하나님 나라의 표적인 것이다. 전문인 선교사들은 2급 선교사가 아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처럼 그도 말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복음의 어떤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들은 각자에게 질문해 보자. 우리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방법으로 선교를 감당하고 있는가? 아니면 우리들이 신학, 선교학, 인류학, 전략 등에만 너무 많이 영향 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 모두 성경으로 돌아가자!♡

(from 선교한국 하의진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