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성탄절은 중요한가?

정교회는 전통적으로 2,000년 전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절을 12월 혹은 1월로 정하고 있다. 물론 그들이 예수님의 지구상에서의 중요한 사역을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리스도인과 무슬림은 그분의 존재와 지구에 오신 그분의 유일성 그리고 그분의 초자연적인 동정녀 출생을 믿는다.

쿠란에서 미리암(Myriam)는 천사에게 자신은 남자를 만지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임신할 수 있겠느냐(쿠란 3:47)고 질문한다. 이에 천사는 그것은 알라의 명령(쿠란 19:20)이라고 대답했다. 왜 예수가 구지 이러한 특별한 방식을 따라 태어나야했는가? 무엇이 동정녀 탄생의 중요한 의미인가? 대부분의 무슬림은 쿠란 이 이 부분에 설명하지 않듯이 무시해 버린다.

그러나 쿠란은 그리스도인과 유대인 처럼 이전에 신의 계시를 받은 사람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백성들이여 너희가 멧세지에 의심을 갖는 다면 알라가 그대 이전에 계시를 내린 사람들에게 물어보라. 진리는 알라로부터 이들에게 내려졌느니라”(쿠란 10:49, 21:7)

그러나 이 구절을 기준으로 무슬림들에게 예수님의 유일하신 출생에 대하여 설명하자. 그러면 아마도 우리는 하나님이 목적하신 진정한 성탄절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유일성

위에서 코란은 예수님에 대하여 몇가지를 언급했다. 따라서 무슬림은 예수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유일한 그분에 대한 개념 – 역사적으로 어떤 사람도 불가사의하지 않았다. 무하메드 역시 그렇지 않았다. 첫 사람 아담과 이부 이후 모든 사람은 아버니와 어머니를 통해서 태어났다. 그러나 나사렛의 예수님은 유힐하게 성령으로 잉태되었다.

그분의 출생은 다른 면에서도 유일하다. 성경은 가브리엘천사가 예수님의 출생을 예언했다(누가복음 1:24-37). 그리고 특별한 별이 나타나 예수님이 출생하신 곳을 가리켰다. 그분의 탄생과(누가복은 2:8-14) 말을 시작하기 전에 천사들이 나타나는 일들이 일어났으며, 동방으로 부터 박사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그에게 경배를 드렸다(마태복음 2:11). 세례 요한이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마리아의 방문에 뱃속에서 뛰며 기뻐했었다(누가복음 1:44).

그분의 죄없으심의 유일성 – 사단은 아담을 시험했듯이 예수님께 다가와서 예수님을 시험했다. 그러나 주사단의 시험은 성공하지 못했다(누가복음4). 지구상의 모든 인류와는 다르게 예수님은 죄가 없으셨다.

그분의 능력의 유일성 – 예수님은 병든자를 고침, 자연환경을 조정함 그리고 죽은 사람을 일으키는 등(누가복음 3:22, 4:1, 14) 다 언급할 수 없을 정도로 수 많은 기적을 일으키셨다. 예수님은 지금까지 지구상에 살았던 그 누구보다 하나님의 능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분의 말씀의 유일성 – 예수님은 단순히 평범한 한 인간이 아니셨다. 그분은 사람들에게 단순히 자신의 가르침을 따르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자신을 따르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이 가르치실 때에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라고 설명하시는 말씀에 놀라지 않았다. 그분의 권위는 그분의 가르침이 아닌 그분 속에 있었다.

예수님의 순수성(거룩하심)

동정녀 탄생은 예수님은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나신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나타내 준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남자와 여자를 통해 태어나지 않으셨다. 따라서 그분은 아담의 후손으로부터 제외되었다. 그렇다면 왜 이것이 중요한 것인가? 왜 예수님이 우리 모두와 같이 아담의 자손으로 태어나지 않으셨는가?

하나님은 모든 생명체 새로 창조하실 수 있는 능력으로 생명체를 창조하셨다(창세기1장). 창조의 처음부터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과 같은”이라는 가장 중요한 원칙을 세우셨다.

아담은 죄인이다라는 것이었다.

우리 모두는 아담과 이브의 창조 이후 모든 세대를 그들의 후손으로 태어 난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아담이 우리에게 영향을 끼친 것은 사람과 동물이 다른 것 이상의 것을 우리는 물려 받았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했다.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이브가 준 과일을 먹었다(창세기2장) 그리고 불순종에 대한 심판이 주어졌다. 그것은 아담의 후손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에게 징계가 주어졌다(창세기 2:17). 죄는 세상에 들어왔고 아담과 이브에게 그리고 모든 피조물에 스며들었다.

아담은 자손을 낳았다.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창세기 5:3). 우리는 전에 언급했던 “자신의 형상과 같이“라는 원칙을 다시 발견할 수 있다. 아담은 자신의 인간성에 손상을 입었었다. 아담이 그랬던 것 처럼 아담의 어린이들 역시 타락되었고 저주를 받았다. 따라서 우리 역시 인간으로서의 사슬을 통해 아담으로까지 올라가며 아담의 죄로 인한 영향은 우리 모두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왜냐하면 아담의 초기의 죄는 우리모두를 죄인으로 만들었으며, 그 결과 죽음이 찾아왔다(로마서 6:23). 그러나 단 한가지 예외가 있다.

하나님의 죄없음으로부터 왔다.

인류 역사상 잘못한 일이 없는 분은 단 사람 밖에 없다. 그분은 유일하게 죄를 짖지 않았다. 그분의 이름은 예수이다. 그분의 죄없으심은 그분은 범죄했고 죄를 지은 아담의 후손이 아님을 보여 준다. 그분의 동정녀 탄생은 아담의 죄로 말미암는 출생을 따르지 않게 했다. 그분의 아버지가 달랐기 때문에 그분 역시 다른 인간들과는 달랐다. 즉 “자신과 같은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다.”라는 구절을 다시 기억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이 육체적인 방법으로 임신하셨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신성을 모독하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성령의 능력으로 태아가 마리아의 자궁에 임신되었다고 말한다(마태복음 1:20). 어떻게 성령께서 거룩하지 않은 일을 하실 수 있는가?

예수님은 거룩하신 어린아이셨다고 코란에서 가브리엘(쿠란 19:13)과 성경(히브리서1장)은 말한다. 그리고 타락하고 범죄한 아담이 받은 저주를 계승하지 않으셨다. 따라서 그분은 “새로운 아담”이셨다. 인간이셨으나 유일하게 하나님의 심판아래 있지 않으셨다. 그분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누가복음 3:22) 하나님의 종이셨다. 따라서 그분에게는 수치, 범죄함, 타락이 없었다.

이러한 증거를 통해 우리는 그분의 거룩함은 그분의 그룹이 아닌 사람들, 그분을 박해했고 경멸했는 사람들로부터 조차 주목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분의 생에의 마지막 빌라도는 자신은 예수에게서 아무런 잘못을 찾을 수 없었다라고 말했고,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으로붙어 손은 씻음으로 자신의 책임이 아님을 나타냈다. 심지어는 악령조차 그분을 “하나님의 거룩하신 분“(누가복음 4:34)이라고 고백했다.

“자신과 같이 창조했다”라는 표현은 왜 예수님이 거룩하지 않았는가?를 이해하게 만든다. 그분의 어머니는 어떤가? 왜냐하면 예수님은 마리아를 통해 인간의 몸을 가지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으로 예수님은 인감의 몸을 지니셨으며, 또한 하나님의 성품을 지니셨다. 물론 예수님은 한 인간이셨다. 이러한 그분의 인간과 하나님으로서의 두 성품은 여러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아래의 설명으로도 충분하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육신, 인간으로 나타나(디모데전서 3:16) 자신을 보이셨다. 그러나 동정녀 탄생에는 여인에게서 태어나심과 하나님이 인간의 몸으로 나타나심의 두 현상이 함께 하고 있다. 동정녀로 태어나심에는 그분의 신성, 거룩하심이 함께 한다.

이브에게 주어진 예언의 완성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세기 3:16)

위의 구절은 하나님이 수천년 후에 이루어질 십자가의 사건을 예언하신 말씀이다. 이브의 후손이 사단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우리는 이것이 십자가 위에서, 부활의 결과로 일어 났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예수님이 죽음으로부터 승리의 나팔을 불 대 사단의 모든 작업이 파괴되었다(고린도전서 15장)

하나님이 아담의 자손 혹은 그들의 자손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특별한 목적과 함께 그녀의 자손이라고 이브만을 가리켜 말씀하셨다. 이브는 모든 여인을 대표한다. 그리고 오직 여인들만이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한 출산의 고통을 겪게 된다(창세기 3:16). 그러나 하나님의 예언을 완성 시키는 장본인 역시 여인이다.

우리가 살펴 본바와 같이 예수님은 아담의 자손이 아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브의 자손이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육체적인 아버지가 없으며, 따라서 아담의 죄를 물려받지 않으셨다.

예수님의 신성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이사야7:14) 마지막으로 동정녀 탄생은 임마누엘이라 이름하는 한 어린아이가 태어남이다. 이것은 일반적인 이름이 아니었다.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뜻이다. 하나님 자신이 동정녀의 몸을 통해 탄생하신 것이다.

이 예언은 메시야이신 예수님의 탄생을 통해 완성되었다. 마리아와 요셉이 부부관계를 맺기 전 마리아는 성령을 통해 임시되었다(마태복음 1:18-25). 이것은 성령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었으며, 성관계가 연관되지 않았다. 일부 무슬림은 이 부분에 대하여 질문한다.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와서 그녀의 몸에 성령으로 임신된 어린아이는 높은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리울 것이라고 말햇다. 그리고 그분은 야곱(이스라엘의 집을 다스릴 것이다(누가복음 1:26-2″52). 마리아는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 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가브리엘은 높은신 성령의 능력으로 일어날 것이며 따라서 성령이 그녀를 보호하실 것이며, 그녀의 자궁 안에 계신 거룩하신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리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왜 예수님의 성품이 오늘날 우리에게 중요한가?

지금까지의 설명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이 유일하게 처녀의 몸에서 태어난 그분의 동정녀 탄생의 유일성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코란은 이것을 설명하지 않고 있다. 그대신 성경을 찾아 보라고 말한다. 우리가 성경을 찾아 볼 때 우리는 다음의 사항들을 발견할 수 있다.

동정녀 탄생은 예수님이 인간과 거룩함으로 탄생하셨음을 나타내 준다.동정녀 탄생으로 예수님은 모든 인간에게 미치는 아담의 징계로부터 예외가 되셨다.왜냐하면 그분은 완벽하셨으며, 그부은 우리의 죄를 완벽하게 책임지셨다. 따라서 우리는 무슬림은 상상할 수 없는 구원에 대한 보장을 갖게 되었다.이것은 이브에게 주셨던 이브의 자손으로 한 사람이 태어나 사단, 죽음, 악령의 힘을 파괴할 것이라는 대한 예언을 완성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지금과 앞으로 영원토록 하나님과 교제 가운데 자유롭게 살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에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임마누엘)의 표시였다. 예수님은 역사상 초자연적으로 태어나신 최초의 사람이셨으며, 우리와 함께 계셨던 하나님이셨다. 우리에게 주셨던 예언의 완성은 이 어린 아이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거룩한 분이셨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예언과 그 예언의 성취를 인식할 수 있있다. 하나님게서 우리 안에 오신이후 더 이상의 선지자, 더 이상의 계시는 필요하지 않다. 모든 것이 이 유일하신 분, 예수님을 통해 완벽하게 완성되었다.이러한 진리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왜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셨는지를 알아야 한다. 코란은 아담의 징계에 대하여 설명하지 않으며 아담의 범죄와 그 범죄의 해결에 대하여 약간의 관심을 나타낼 뿐이다. 또한 동정녀 타냇에 대하여 아무런 관심을 나타내지 않는다(쿠란 10:49). 그러나 성경은 이 부분에 분명한 해답을 주고 있다.

바로 이것이 단지 2,000년전에 발생했던 역사적인 사실을 상기 시키는 것이 아니라 성탄절의 목적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유일하심이 없이는 우리의 죄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어떻게 우리가 무슬림에게 예수님은 유일한 인간이셨다고 계속해서 선포할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유일한 탄생, 동정녀 탄생, 또한 아주 중대한 의미를 전해 주는 성탄절을 통해서만 설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