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기독교에서 권위있는 책들

  • 예수와 초기 기독교는 결코 성경이 없지는 않았다. 그들은 구약을 “성경”으로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유대교에서 물려 받았으며 후에 구약 정경이 된 세부분 모두에서 인용되었다.
  • 랍비들에 의해서 주후 1세기에 성경으로 규정된 39권의 마소렛판의 정경은 여러 세기 동안 기독 교회에서 채택하지 않았다.
  • 초기 기독교는 “성경”을 가지고 있었지만 확실하게 한정된 정경이나 배타적인 기준을 인식하고 있지는 않았다.
  • 고전 15:1에서는,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초기 기독교 신앙의 근거가 되고 있다.
  • 새로운 살아있는 규범은 우선 주님을 위시해서 주님의 메시지를 증거하는 사도들을 갖고있던 교회에서 형성되었다고 하는 점이다.

2. 사도이후 시대에서 정경화 과정의 예비적 단계들

  • 주님의 말씀을 인용할 때에 그것들이 기록되어 있었다는 표시가 없다고 하는 사실이며 오늘날까지 클레멘스 1서나 이그나티우스 서신이 쓰여진 복음서를 알고 있었는지 모르고 있었는지 하는 문제에 대해 아무런 견해도 보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 최소한 2세기 초까지는 소아시아에서 알려져있던 바울 서신들의 수집이 끝났고 이러한 수집은 이미 마르시온의 정경에 있던 10통의 편지 전부를 포함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 2세기 중엽쯤에는 상황이 바뀌어져 갔는데 클레멘스 2서와 130년대에 기록된 폴리캅의 서신의 주요 단락들이다.
  • 사도시대 이후로 이러한 저작들의 수집과 병행해서 2세기 중엽에는 “성경”이 형성되는 예비적 발전이 있었다.
  • 소위 클레멘스 2서는 교회의 기원이 위에서 부터 온 것이라는 교리를 뒷받침하는 권위있는 것으로서 를 들고 있고, 그럼으로써 그 본문의 가장 타당한 의미에 따르면, 그는 사도들을 구약성서와 나란히 살아있는 권위로 놓았던 것.

3. 2C 후반부에서 정경화의 시작

  • Justin이 4복음서 정경을 알고 있었는지는 증명될 수 없고 Justin 에 의하면 인용된 몇 가지 조화를 이룬 공관 복음서의 본문들은 그에게 구전 전승으로 전해졌을 가능성도 아주 높다.
  • Marciond의 정경은, 다소간 후대의 서문들에 의해서 보여주는 신학적 의도에 따라서 특정지어 있는데, 분명히 두 부분으로 정확하게 구분된 성격이었다.
  • 2부로 구성된 새로운 경전이 2세기말에 발전되고 있었다는 사실은 Vienna와 Lyones의 교회들의 서선들 속에서 177년부터 요한계시록을 로 인용하고 있었다.
  • 2세기말의 세 명의 위대한 신학자들은 4복음서와 13통의 바울 서신들, 사도행전은 베드로전서, 요한1서 그리고 요한계시록이 포함된 사도 서신들을 내용으로 하는 신약 성서를알고 있었던 반면에, 일반 서신들과 히브리서의 경전성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고, 또 종종 다른 문서들이 경전성이 있는 것으로 취급되었다.
  • 여기서 우리가 개별문서들을 포함시키거나 제외시킨 동기들에 관해서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아주 분명했던 의식은 예언적인 문서들의 숫자가 고정된 것과 마찬가지로, 사도적인 문서들도 정확한 한계가 정해져서, 새로운 겅경도 확정적인 것이 되어야만 한다는 생각이였다.

고대 교회에서의 신약정경의 확정

1. 오리겐에서부터 고대 말엽까지 헬라교회 내에서의 신약성서

오리겐은 자기 새대에 신약성서와 관련해서 교회의 여러지방 별로 어떤 경향이 있었는지를 알아내고, 이 연구에 근거해서 조심스럽게 몇가지의 결론들을 이끌어 낸 것이다.

  • 의심스로운 문헌들 : 베드로 후서, 요한2서, 3서, 히브리서, 그외에 야고보서와 유다서, Hermas의 목자서와 Didache를 로 인용함.
  • 에집트 복음서, 도마 복음서, 바실리드 복음서, 맛디아 복음서 이런 것들은 이단적인 왜곡이 있는 것으로서 배척됨.
  • 3세기에는 Codex Claromontanus에 의해 다른 증거가 제시됨.

이 목록 안에는 4복음서와 13통의 바울서신들, 7통의 일반 서신들, 요한계시록, 사도행전 등이 열거되었다. 신약성서의 사도적 서신들의 한계에 대한 불확실성은, 가이사랴의 Euswbius가 자기의 교회사에서 신약성서에 관해 발였던 확대된 논쟁에서 나타남.

  • 유세비우스 자신이 증거하는 7통의 일반 서신들을 대부분은 알고 있었고, 그러므로 그에게 있어서 의견이 일치되는 문헌들과 의견이 나누이는 문헌들 중 첫째 그룹이 함께 묶일 수 없다면, 현대적인 의미의 신약성경이 구성되었던 것이다.
  • 이러한 신약 성경의 범위에 대한 불확실성은, 동방 교회에 있어서는 367년의 Athanasius 의 39회 부활절 축제 서한에 의해서 종결되었다. 이 서한은 거의 완전하게 헬라어, 시리아어, 그리고 콥트어로 보존 되어 있다.
  • 후기 비잔틴 시대까지 님아 있었던 신약 성서의 헬라어 문헌들 중에는 단지 몇개 만이 요한계시록을 포함하고 있고, 요한계 시록의 대부분의 헬라어 사본들은 그 본문이 주석의 일부로서가 아니면 비 성서적인 문헌들과 함께 나타나고 있다.

2. 시프리안에서부터 5세기까지의 라틴 교회에서의 신약성서

  • Novatian (약 250년 경)은, 복음서와 사도행전 그리고 열 세통의 바울 서신들 이외에는 단지 요한 1서와 요한계시록만을 “성경”으로 인용.
  • Jerome 은 서방과 동방의 경전 사이의 구분을 철폐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사람.
  • Ambrosioster 라는 사람은 히브리거를 제외한 13통을 바울 서신들로 제한 했으며, Pelagius 도 로마에서 약 400년 경에 시도함.
  • 4세기 후반에는 Piotoers 는 히브리서와 야고보서, 그리고 베드로 후서를 사도적인 것으로 인용함.

3. 동방의 국가 교회들 안에서의 신약성서

  • 5세기 초에 생성된 시리다의 전승인 Doctrina Addai 가 전하는 바로는, Edess 의 교회를 설립한 사람이 자기를 고별 설교에서 후임자 Aggai 에게 훈계하기를 구약성서 이외에는 복음서, 바울 서신들, 사도행전 등 하나님의 진리가 담긴 것 이외의 다른 문서들이 교회에서 읽혓는 안된다고 했다는 것이다.
  • 5세기 초에 감독안의 공동 노력에 의해서, 시리아 교회의 성경인, 소위 말하는 Peshitta 가 형성됨. 히브리서를 포함한 14통의 바울서신들 다음에는 세 통의 일반서신들, 야고보서, 베드로 전서, 요한1서 등이 있었고, 요한계시록등 다른 것들은 제외되었다.
  • 508년에 Mabby 의 감도 Phildyenus에 의한 공인개정 작업 – 즉, 신약성서의 새 번역 사업으로서, 소위 Philoxeniana – 과 616 년에 Harkel 의 Thomas 에 의한 수정 작업에는 요한2서, 3서와 벧후,유다서, 그리고 요한계시록이 포함됨.
  • 종교 개혁 이후의 서방교회에서의 정경과 정경에 대한 신약적 문제 *. 1442년에 플로렌스 공회에서 서부 시리아의 야곱파와 연합할 때에도, 아타나시우스의 정경은 다시 한번 논의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공인되었다.
  • Trent 공회는 구약 성서 전체와 신약성서 전체가 Vulgate 에 수록되어 있는 그대로 정경성이 있는 것이라고 선언하였으며, 모든 개별적인 책들을 열거하였는데, 그 가운데 히브리서는 바울의 14번째 서신으로, 야고보서는 사도 야고보의 것으로 열거되었다. 공회는 전체 성서의 모든 책들이 같은 권위를 기지고 있는 것이라고 선언함.
  • 비록 신약 정경의 외적인 역사는 종결되었지만, 계몽주의 신학 시대 이후로 정경에 대한 교회의 제한과 개신교 신학에 있어서 정경의 구속력 등이 타당한 것인가 하는 점이 문제가 되었다.
  • Semler 시대 이후로 얻어진 바를 정경의 범위에 대한 여러 세기에 걸친 동요와 역사적 발전에 대한 통찰이야말로 정경의 이러한 형성의 가치와 합리성을 고려하게 해주는 것이다. 정경의 역사는 복음서와 사도문서들로 구성된 두 부분으로 된 정경이 교회의 삶속에서 2세기에 자연스럽게 형성되었음을 보여준다.
  • 정경의 범위에 대한 고대 교회의 결정들은 대부분 사도성을 문제 삼았는데 근본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할 필요가 있으며 사도성이라고 하는 기준도 역사적으로나 교리적으로 쓸모가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 정경의 범위에 대한 현실적인 개방성과 사실상의 한계 설정은 예수 그리스도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의 역사성과 관계가 있는 것이다.

신약성서는 어떤 사본에 근거하고 있는가

신약성서의 원본에는 원저자 자필의 원본은 없다. 그러므로 모두 사본에 의하여 전승되어 있다. 신약성서의 원본의 재건에는그리스어 사본, 고대 번역, 교부들의 저서 중에서 성서를 인용한 것과 언급한 것 등의 세가지 사료가 주로 사용된다. 그중에서 그리스어 사본이 주요 사료가 되며, 고대의 번역과 교부들의 인용구나 언급, 그리고 그 밖의 단편들은 2차적인 사료가 된다. 그러나 번역도 양질이나 정본의 독법을 반영했을 경우는 그리스어 사본과 맞먹는다. 그리고 초기 교부들의 인용이나 언급은 중요한 도움이 된다. 그리스어 사본의 수는 5천을 넘으며, 이것은 다음 네 종류로 분류된다.

  • 파피루스(사본수 81)
  • 대문자 사본(267)
  • 소문자 사본(2,768)
  • 일과서(2,146)

신약성서의 주요 사본은 기원 2세기에서 10세기 사이의 것이 많이 남아있다.
대문자 사본으로 주요한 것으로는
시나이 사본
(4세기, 시나이산 기슭 수도원에서 발견되어 그런 이름이 붙었다. 대영박물관 소장)
바티칸 사본(4세기, 바티칸 도서관 소장),
알렉산드리아 사본(5세기,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의 것, 대영박물관 소장),
에브라임 사본(5세기, 중기 사본),
배자 사본(5-6세기, 그리스어와 라틴어의 대조판)등이 있다.♡

(from : k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