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시작된 이슬람 복고주의운동이자 시회주의운동
2005년 8월일 사망한 사우디 아라비아의 파드국왕의 장례식이 전통 와하비즘 방식으로 검소하고 조촐하게 치러졌다. 사우디 아라비아의 건국이념으로 알려진 와하비즘은 18세기 중엽 아라비아반도에서 출현한 이슬람 복고주의 운동이자 사회·정치 운동이다.

이슬람 전통주의(원리주의)를 이어받은 보수주의 운동으로, 와하비야(al-Wahabiyah) 운동이라고도 한다. 이슬람문명의 주요 성지를 돌아다니면서 18세기 이슬람 사회의 병폐를 직접 경험한 압둘 와하브(Muhammad ibn Abdul Wahab)가 1745년 창시하였다. 와하비즘은 창시자 와하브에서 유래한 것이다.

와하브는 당시 이슬람 사회가 낙후한 원인은 전통 이슬람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며,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이슬람교의 근본 교리와 경전인 코란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인간과 신 사이에 중개자가 있다고 믿는 유일신 부정설과 수피즘을 배격하고, 코란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또 성물과 성도 숭배를 배격하고, 비이슬람적인 음주·도박·춤·흡연이나 화려한 치장 등을 철저히 금하였다. 그 뒤 와하브는 네지드 지방에 있는 사우디 가문의 이븐 사우드(Muhammad ibn Saud)와 정략적 동맹을 맺고 자신의 정치적·사회적 주장을 실현시키고자 하였다. 와하비즘은 여기서 유래한 것으로 와하브의 종교적 이념이나 가르침을 따르는 이슬람 복고주의 운동이자 이슬람 부흥운동을 일컫는다.

그 뒤 이 운동은 정교일치를 주장하는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의 지배 이념이자 건국 이념이 되어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을 성립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1964년 왕위에 오른 파이잘(Faisal)이 와하브 교단에 많은 권한을 부여하고, 교단은 왕가의 통치를 지지하면서 와하비즘은 점차 극단적인 운동으로 변질되었다. 또 와하브가 주장한 본래의 이슬람 복고주의 운동과는 달리 수피즘적 요소가 가미되었는데, 이러한 경향은 이슬람권의 부패정권 청산과 중동·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등지에서 서방세계를 몰아내는 형태로 나타났다.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을 때 소련군에 대항해 무장투쟁을 전개한 게릴라 조직 무자헤딘(mujahidin)도 와하비즘 추종자들이고,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이 이끄는 국제 테러단체 알 카에다(Al-Queda)는 와하비즘 세력 가운데서도 가장 극단적인 단체이다.

이슬람의 두 얼굴’이란 책을 쓴 스티븐 슈워츠(Schwartz)는 “와하비즘은 유럽 종교개혁때 나타난 가장 극단적인 신교 종파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와하비즘은 시아파 이슬람과 타 종교는 물론, 자신과 다른 수니파 조차도 모두 제거돼야 할 ‘배교도로 본다. 이 탓에 사우디를 탈출해 미국에 사는 이슬람 시아파 신자들이나 다른 종교 신봉자들은 와하비즘외에 다른 종교가 완전히 부인된 사우디의 현실을 통렬히 비판한다.

전통적인 이슬람은 세계는‘이슬람 영향권(평화)’과 ‘전쟁의 영향권’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이슬람권이 직접적인 공격을 받지 않는 한 두 영향권간에 전쟁은 없다고 본다. 그러나 와하비즘 추종자들은 와하비즘을 거부하는 자들을 ‘이슬람과 전쟁 상태’에있는 적으로 본다고 한다.

미국 공영 방송(PBS)의 웹사이트에 가보면, 와하비즘에 대한 각종 분석이 사우디 현지인들과 미국 내 이슬람 전문가들의 얘기로 잘 소개돼 있다.

사우디 내에서도 실제 와하비즘 신봉자는 전체 인구의 40% 정도이지만, 슈워츠는“와하비즘 신학자가 종교 교육을 완전히 장악해, 학생들은 다른 이슬람 전통과 타종교는 배척하는 분위기에서 자란다”고 말한다. 사우디의 9학년용 이슬람 교과서는 “무슬림이 모든 유대인을 죽이기 전까지는 심판의 날은 오지 않는다”고, 대학 교과서는 “진정한 무슬림은 전체 무슬림의 5%(와하비즘 신봉자)에 불과하다”고 가르친다. 이런 엄격한 와하비즘 환경에서 자라난 사우디의 젊은이 중에 오사마 빈 라덴이다.

빈라덴과 많은 젊은이들이 와하비즘과 비슷한 정교일치의 이슬람 국가를 추구하는 아프간 이슬람 신학교 탈레반(학생이란 뜻)들과 힘을 합쳤고, 결국 1996년 탈레반 정부를 수립하였다.

그러나 미국은 9·11테러 이후 이 아프간의 탈레반 정부를 붕괴시켰고, 아프간에서 패퇴하고 고국으로 돌아온 아랍의 많은 젊은이들은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자 이에 맞서 다시 형제국 이라크를 구하기 위해 이라크 국경을 넘었다. 와하비즘 또는 유사한 순수 이슬람 운동으로 무장한 이슬람 테러 조직은 바로 서방의 석유 이해관계와 결탁하고 부패한 사우디 왕가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작년 2004년 9월 사우디의 사실상 통치자인 압둘라 왕세자(왕의 이복동생으로 왕위 세습권 1위)는 이슬람 교육가들을 불러 모아놓고, “극단적인 교리를 가르치지 말고, 극단적 행동을 보호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결국 그렇게도 부인해 왔지만, 자신의 권력 기반을 흔드는 테러조직들이 사실은 바로 사우디 왕가의 건국 파트너 였던 와하비즘으로 무장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지금 사우디는 국내에서 이들 테러리스트와의 전쟁이 한창이다.

자신들이 전세계 이슬람 사원과 이슬람 학교들을 오일 머니로 지원하면서 수출했던 와하비즘이 결국 부메랑이 돼서 돌아온 것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