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하메드가 632년6월8일 메디나에서 갑자기 죽었을 때 무슬림 사회는 커다란 지도력의 위기에 봉착했었다. 무하메드는 후계자 지명에 대해 어떤 지침도 남기지 않았다. 무하메드가 마지막 예언자였으므로 새로운 지도자는 ‘예언자’라고 불릴 수 없었다. 그가 죽었기 때문에 더 이상 알라로부터 새로운 계시가 올 수 없었고, 무슬림은 코란과 하디스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다. 무하메드의 장례가 준비되던 때 매우 중요한 회의가 열리게 되었다.

이슬람교가 삶의 전 영역을 포괄하므로 초기의 무슬림 사회에서는 종교와 정치간의 구분이 없었고, 각 지역의 세속 정부의 권위도 인정하지 않았다. 이것이 메카에 있는 무슬림과 메디나에 있는 무슬림 간의 싸움의 주요 원인이 되었고, 두 그룹 모두 자신들이 진정한 후계자라고 주장하였다.

메카의 무슬림들은 무하베드와 가장 친하고 가장 신뢰받는 친구인 아브 바크르를 선택했고, 그는 칼리팟 아술 알라(하나님의 사자의 후계자)라는 이름을 얻었고, 첫 번째 칼리프가 되었다. 아부 바크르는 이슬람의 종교적, 정치적 지도자가 되었다. 이것은 이슬람교의 수니파가 지지하는 철학이다.

그러나 메디나의 무슬림들은 무하메드가 자신의 사위인 알리를 후계자로 남겼다고 강하게 생각했다. 무하메드의 딸인 파티마와 결혼한 알리는 선거 과정을 통해 선출되었다. 알리와 그의 지지자들은 바르크의 후계자 임명에 반대하였고, 결국 이슬람교의 시아파를 형성하게 되었다. 시아파는 이슬람교가 인간의 지혜로 이해할 수 없는 신의 계시이므로 지도자가 종교적 권위를 가져야 된다라고 느꼈다.

수니파 이슬람은 코란이 최종적인 계시이고 더 이상 이에 첨부될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에 더 정통파로 인정되었다.
시아파 이슬람은 이맘이라고 부르는 종교지도자를 믿고, 그가 신의 계시를 더 받아 코란에 덧붙일 수 있다고 믿는다. 그 결과 시아파 이슬람은 더욱 극단주의적이라고 여겨진다. 지도력의 문제는 모든 무슬림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스마렐리스, 무피, 알라위, 샤피, 하니피리 등등의 많은 분파가 생겨나게 되었다.

모든 무슬림은 동일한 근본적인 가치관을 믿지만 이러한 가치관은 지역과 분파에 따라 많은 다름 관습과 의식에 의해 표현된다. 무슬림의 새해의 시작은 무하람이라고 불리고 이는 거룩한 달이라는 뜻이다.

시아파 무슬렘들은 이 달 알리의 아들이자 무하메드의 손자인 후사인과 후사인의 아들 카심의 순교를 기념하기 위한 애도의 시간으로 지킨다. 무하람 월의 7일부터 10일까지 그 비극적인 사건의 낭송과 젊은이들이 날카로운 칼로 피가 흐르기까지 자신을 치면서 행진하는 의식들이 행해진다.

수니파 무슬림 또는 이 의식을 거행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을 칼로 치지는 않는다. 사이파 무슬림 순교의 구속적인 성격을 더욱 강하게 믿는다. 기도 중에 수피 무슬림은 그들의 손을 옆구리에 살짝 댄체로 기도한다. 여자들은 수피나 수니나 그들의 손을 가슴에 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