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무하메드의 출생:

   모하메드는 서기 572년 사우디 아라비아의 메카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기 두 달 전에 죽은 아버지는 가난하지만 구별되는 아랍 부족 중 하나인 코레이쉬족에 속해 있었다. 아직 청년시절이었던 때, 모하메드는 부유한 과부와 결혼하여 일상노동의 필요에서 해방되었다. 모하메드는 자신이 종교적 명상에 몰입할 수 있는 충분한 여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당시, 유대교와 기독교가 중부 아랍 부족에 의해 받아들여졌지만, 우상숭배가 그들의 고대 제의를 대신했을 뿐이었다.

   모하메드는 명상과 기도를 위해 매년 히라 산으로 가곤 했다. 산에서부터 돌아온 지 1년만에 모하메드는 자신을 신의 선택된 예언자로 선언했다. 모하메드는 자신이 산의 동굴에 있는 동안 첫번째 환상을 보았다고 주장했다. 메카로 돌아오자, 그는 9년 동안 자신의 메시지를 설교했으며, 많은 지지자를 얻었다. 하나가 태동하면, 이것은 다른 기존의 신앙들과 마찰을 일으키는 법이다. 결국, 612년에 그는 자신의 추종자에게서 적이 그를 죽이려 한다는 경고를 받고 도망가야만 했다. 이러한 피신이 이슬람 달력의 시초가 되었고 헤지라(Hejirat) 1년이 되었다. (헤지라는 “도망 또는 이주 후”라는 의미이다.) 그의 도망으로 그는 추종자들을 얻었고 630년에는 코레이쉬족의 손아귀로부터 메카를 빼앗기 위해 돌아왔다. 그는 그 후 모든 아라비아에서 “예언자”로 인정을 받았다.

   모하메드는 메카로 돌아온 후 2년만에 사망했으며, 그의 일생 동안 그의 추종자들은 조심스레 그의 말과 환상들을 필사했는데, 이것은 그 자신은 어떻게 써야 할지를 몰랐기 때문이다. 645년에 즉. 그가 죽은 지 10년 후에 알리(모하메드의 의형제)와 다른 지도자들은 이러한 모든 필사본들을 모아 합쳐서 코란(Qur’an)을 만들었는데, 114개의 장과 6236개의 절로 되어 있다. 이것은 이슬람 신자들에게 성경처럼 되었다.

2. 이슬람 형성

   모하메드의 시기 이후에, 무슬림 공동체는 여러 집단으로 쪼개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과정에는 신학적이거나 철학적인 것만큼 정치적인 요소와 문화적인 요소가 중요했다. 이슬람 사상의 발전에 있어 형성기는 사상의 흥미진진한 전쟁터였으며, 결국 정통 수니파로 일반적으로 알려진 분파로 귀결되었는데, 이 수니파(Sunni)는 대다수 무슬림들이 따르는 확립된 교조가 되었다. 주요 이슈는 믿음과 행위, 운명예정과 자유의지, 계시와 이성, 신의 유일성이 함축하는 것, 코란의 영원성, 코란을 문자 그대로 해석할 것인지에 관한 것들이었다.

   모하메드가 622년 9월에 메디나로 도망을 간 것이 이슬람 시대의 기원을 이루었고, 632년 6월의 그의 죽음은 상당한 권력과 명예를 갖는 국가를 세우는 데 성공케 했다. 이 짧은 10년의 기간 동안, 사막에 거주하는 아랍의 베두윈 부족들 대부분은 이슬람의 예언자와 동맹을 맺겠다고 서약했으며, 이것은 아라비아 반도를 넘어 알라신의 새로운 신앙을 계속해서 확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하지만, 모하메드의 죽음은 유아기의 이슬람 공동체에 첫번째 주요 위기를 가져다 주었다. 이어지는 위기는 이슬람 공동체에서 필경 수니파와 시아파로 영원히 나뉘도록 한 것의 시초가 되었다.

3. 첫번째 주요 위기

   모하메드가 살아있는 동안, 무슬림들은 그가 이슬람의 계시된 메시지에 따라 가장 훌륭한 지시를 내려주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가 메디나에서 죽자, (적어도 다수파의 관점에서 보면) 예언자가 그의 후계자에 대한 형식적 지시나 유언을 남겨놓지 않았기 때문에 무슬림들은 심각한 혼란상태에 빠졌다. 계속되는 토론 가운데서, 단 한 가지 점에서는 즉각적인 합의가 이루어졌다. 신의 계시를 통하여 모하메드는 “예언자들의 봉인(Seal of the Prophets)”이라는 것이 이미 알려졌기 때문에, 예언자의 후계자는 또 하나의 예언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효과적인 지도력을 가지고 이슬람 공동체와 국가의 지속성을 확실히 할 수 있는 후계자를 질서롭게 선출하는 것이 여전히 중요했다.

   결과적으로, 많은 논쟁 가운데, 이슬람 최초의 개종자들 중 한 사람이자 모하메드에게서 신뢰받던 동료인 아부 바크르(Abu Bakr)가 후계자로 선출되었다. 그는 칼리파트 라술 알라(Khalifat Rasul Allah, 신의 사자의 후계자)라는 호칭을 받았으며 이 호칭은 곧 칼리파트(영어로는 “칼리프”)로 단순화되었다. 이처럼 예언자의 첫번째 후계자가 선출됨으로써, 이슬람의 독특한 칼리프 제도가 또한 생긴 것이었다. 바로 그러한 시초에서부터, 칼리프직은 공동체의 종교적, 정치적 지도력을 함께 통합시켰다. 초기 무슬림들은 종교와 국가, 종교적인 권위나 조직과 세속적인 것 사이의 차이점을 알지 못했다. 사실, 질서에 대한 엄격한 신정주의적인 구상은 이슬람이 단순히 종교일 뿐만 아니라 도덕적, 영적인 통치수단이자 사회적, 정치적 것으로서 신이 위임한 완전한 체계라는 것인데, 이러한 구상은 모하메드의 언행을 통합한 것이었다.

   아부 바크르의 칼리프직은 2년 동안 지속되었으며, 634년에 그가 죽기 전에 그는 개인적으로 우마르(‘Umar)를 후계자로 지목했다. 644년에 암살당한 우마르는 자신의 후계자의 선출을 위한 새로운 절차를 도입했는데, 그것은 초기 동료 6명의 위원회에서 그들 가운데 새로운 칼리프를 선택한다는 것이었다. 머지 않아, 중요한 메카인 씨족 중의 한 사람인 우트만 브 아판(‘Uthman b ‘Affan)이 선출되어 3대 칼리프가 되었다.

4. 시아파 이슬람의 시작

그러는 동안, 모하메드가 죽자 마자, 메디나에서는 모하메드의 사촌이자 사위(모하메드의 딸 파티마와 결혼)인 알리 브 아비 탈리브(‘Ali b Abi Talib)가 아부 바크르나 다른 어떤 후보자보다도 예언자의 뒤를 잇기 위해 가장 자질이 있다고 믿는 소수 집단이 나타났다.이 소수집단은 시아트 알리(Shi’at ‘Ali)로 알려졌고 시아(Shi’a)로 다시 단순화되었다. 알리의 후계자 승계는 메디나에 있던 그의 일당의 지지를 받게 되었고, 곧 시아파는 교리를 만들었으며 그들의 교리는 보다 폭넓은 인식을 받아들였다.

   시아파는 모하메드가 사실은 후계자를 지명했으며 그 사람은 바로 알리라고 믿었다. (그들은 후계자를 영적인 지도자로 부르기를 좋아하여 이맘(imam)이라고 하였다.) 알리와 그의 동료들은 선거제를 통하여 예언자의 후계자를 선출하는 행위에 대해 반기를 들었다. 이것이 무슬림 다수파로부터 시아파를 분리시키게 된 바로 그러한 반란이었다.

   정당한 질서에 대한 투쟁에도 불구하고, 최초의 4명의 칼리프들 (알 쿨라파 알 라시둔(al-khulafa’ al-rashidun) 또는 “정통 칼리프”로 알려짐) 은 코란에 담긴 계시의 내용대로 이슬람의 메시지가 담고 있는 모든 포괄적인 규율의 정통 보존자로 여겨졌다. (수니파 이슬람으로 알려진 것은 이러한 정통파였다.)

   시아파의 교리에 따르면 이맘들(알리와 그의 직계 후손들)은 종교적인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유일한 근거였으며, 가장 중요한 논점은 이슬람의 교리와 종교적 주장의 해석에 관계된 것이었다. 이것은 그들이 코란의 가르침과 이슬람의 성스러운 율법 (샤리아, Shari’a)이 인간을 뛰어넘는 곳에서 나온 것이며 따라서 인간 이성으로는 파악될 수 없는 진리를 담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슬람 계시의 참된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맘이라고 하는 종교적인 권위자가 필요하다고 시아파들은 인식했다.

   알리는 마침내 4대 칼리프로 계승했지만, 시아파는 그가 첫번째 진짜 칼리프라고 믿고 있으며 11명의 다른 칼리프들이 뒤를 이었다. 시아파의 눈에, 알리의 후계자로서의 독특한 자질은, 모하메드의 유언을 통해 표현된 대로 신의 명령에 의해 임명되었다고 하는 또 다른 중요한 차원을 갖는 것이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알리는 또한 신적인 영감을 갖고 있으며 오류와 죄가 무결하고, 따라서 그의 지식에서나 예언자의 뒤를 이은 가르치는 권위자로서나 그는 완전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들의 믿음 때문에, 시아파는 “12인”(twelvers, 이맘의 수에 근거하고 있다)이라고 알려졌다. 12번째 이맘이 878년에 신비하게 사라지자, 이맘직은 끝이 나고 울레마(ulema)라고 하는 시아파 종교학자들의 집단조직이 그의 직위를 대신했고 그가 다시 ‘정당하게 지명된 자(rightly guided one)’로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현재의 아야톨라(Ayatollahs, 신의 표적)는 자신들을 역사 끝에 오게 될 이맘의 지위를 공동 관리하는 자로서 인식한다.

   하지만, 후계자 계승이 모든 시아파의 동의를 받은 것은 아니었고 또 다른 집단이 떨어져 나와 “7인(seveners)”이라고도 하는 이스마엘파(Ismaelis)가 되었다. 이유는 정당한 7대 이맘 (그래서 마지막 이맘)은 무사 알 카짐(Musa al Kazim)이 아니라 어릴 때 죽은 그의 형 이스마일이라는 분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열”의 결과로 대체로 다음과 같이 결론지을 수 있겠다. 정통 수니파 이슬람은 기본적으로 코란이 최종적인 권위를 가지며 더이상의 계시는 없다고 믿는다. 시아파 이슬람은 정당한 이맘은 코란의 메시지를 추가할 수 있는 신적인 영감과 알라의 권위를 함께 갖는다고 믿는다. 이처럼 시아파 이슬람은 2개의 주요 분파 중 보다 급진적이고, 여러 세기 동안 많은 사람들이 차기 “이맘”이라고 주장하면서 자신들의 특별한 주의로 무슬림들을 재통합하려고 시도하였는데, 불행히도 이것은 지하드(Jihad, 이교도에 대한 성전)로 자주 표출되었다.

5. 분열과 또 작은 분열

   이러한 초기 시절에는 더 많은 분열이 무슬림 공동체에서 있었다.

  • 하리즈파(Kharijites, 탈퇴자)는 그 당시 무슬림 지도자들이 코란을 엄격히 따르지 않으며 신에게 주요 결정을 맡기지 않는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알리 당”에서 축출되었다. 아직도 북 아프리카에서 소수 분파로 남아있는 이 하리지파는, 이슬람은 성인들의 공동체이어야 하며 중대한 죄를 저지른 사람들은 무슬림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하여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행위보다는 올바른 믿음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중대한 죄인에 대한 결정은 심판의 날에 신에게 유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무르지파(Murji’ites, 연기자, 희망하는 자)라고 불리워졌다. 예정운명보다는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또 카다르파(Qadarites, 결정자)라고 불리워졌다.
  • 이스마엘파(Ismaelis)는 자신들의 독특한 사상을 발전시켰으며, 10세기에 번성하여 이집트, 팔레스타인, 시리아의 파티마 왕조(Fatimid dynasty)를 세우는 데 영향을 끼쳤다. 그들은 또한 이슬람의 활동적인 선교사들이었으며 특히 남부 아라비아와 동부 아프리카로 퍼져나갔다. 이스마엘파의 본 조직은 2개의 분파로 나뉘었는데, 무스탈리파(Musta’lis, 봄베이에 본부가 있다)와 니자리파(Nizaris, 아가 칸의 지휘를 받았다)가 그것이다. 다른 지파로는 누사이리파(Nusayris)와 드루즈파(Druze)가 있다.
  • 드루즈파는 비밀 조직으로서, 금요일 대신 목요일에 모이고, 일부일체제를 엄격히 고수하며 ‘알리는 신의 화신이다’라는 것과 같은 독특한 신앙과 자신들의 엄격한 경전을 가지고 있다.
  • 하쉬샤신파(Hashshashin, 암살자)도 11세기 초기 십자군의 기간 동안 시리아의 이스마엘파에서 떨어져 나왔다. 그들은 인도대마(hashish)를 사용하여 그 이름을 얻었는데, 십자군의 요새를 탈환하고 기독교인을 암살함으로써 유명해졌다. 오늘날, 그들은 호자스(Khojas) 또는 마울라스(Mawlas)로 알려져 있으며 인도의 봄베이 지역에 주로 거주하지만, 일부는 시리아나 이란에도 있다.
  • 가장 초기의 수니 학파 중의 하나는 아부 하니파(Abu Hanifah, 767년 사망)가 형성한 것인데, 하나피 제의(Hanafi rite) 또는 학파로 알려졌다. 그것은 근본주의자들과 비교될 수 있을 정도로 보다 자유로운 학파 중의 하나로 여겨졌다. 이 학파는 중앙아시아, 터키, 비옥한 초생달 지역의 아랍 국가들, 저지대 이집트, 인도의 투르크 민족 사이에서 지배적이다.
  • 말리크 이븐 아나스(Malik ibn Anas, 795년 사망)는 말라크 제의(Malakite rite)라고 알려진 또 다른 학파를 창설했다. 이 제의는 예언자 그 자신보다는 모하메드의 동료들의 전통에 의지하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을 근거로 발전되었다. 모순되는 전통이 있게 되면, 말리크와 그의 추종자들은 단순히 그 절충안을 만들어냈다. 이 제의의 지지자들은 북아프리카, 특히 알제리에서 세력이 매우 강하다.
  • 샤피파(Shafi’ites)는 알 샤피(Al Shafi’i, 820년 사망)에서 그 이름을 따왔는데, 그는 말리크의 추종자였다. 일생 동안, 그는 이슬람 법학의 발달에 주목할만한 영향을 끼쳤으며, 샤리아(Shariah, 기본법)의 정의와 하디트(Hadith, 모하메드의 발언록)을 권위적인 문서로 만드는 데 역할을 했다. 샤피파의 구성원은 저지대 이집트, 시리아, 인도, 인도네시아에서 발견할 수 있다.
  • 신비주의적 사고는 AH(이슬람 기원) 1세기에서부터 이슬람 사상의 흐름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수피 교단(Sufi orders)의 기원은 그 의식만큼이나 신비스럽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아랍인들이 사용하는 좌상인 “수페(suffe)”라는 단어에서 나왔다고 주장한다. 모하메드의 가까운 지지자들이 정기적으로 와서 수페에 앉아 그의 설교들 듣고 지혜를 배웠을 때, 그들은 점차로 수피로 불려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수피 대부분은 집을 떠나 산이나 사막, 반도로 가서 고독과 알라에게 가까이 가기를 구했다는 것이다. 세상의 육체적 안락을 포기하고 조용한 기도와 명상을 추구하면서, 그들의 궁극적 목적은 세속의 삶을 뛰어넘어 알라와 하나 될 수 있는 천상의 영원한 정적에 이르고자 했던 것이다.
  • 다른 사람들은 이 분파는 수프(suf)라는 아랍어 단어에서 나왔다고 하는데, 이 단어의 의미는 양모를 뜻하며 초기 무슬림 신비주의자들이 입던 길다란 간편의상의 재료를 말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 이렇게 분명한 정의된 분파와 그들과 같은 다른 분파 외에도, 이슬람에 포섭되는 아주 다양한 집단들이 많다. 어떤 경우에는, 이슬람과 비 이슬람 요소가 결합하여 종교혼합적인 집단을 형성하기도 하는데,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인도의 시크교가 있으며 그것은 이슬람과 힌두의 신앙 및 의식을 결합하고 있다.

6. 무슬림은 무엇을 믿나

무슬림들은 자기들의 구원은 자신의 노력에 달려 있다고 믿는다. 무슬림이 되기 위해서, 개인은 먼저 회개를 해야 하며, 특히 우상숭배에 대하여 회개해야 하고, 그리고 나서 알라 외에 다른 신은 없으며 모하메드는 그의 사자라는 것을 시인해야 한다. 이것을 다 하고 나면, 개인의 구원은 부활의 날에 자신의 죄의 무게가 선행의 무게와 얼마만큼 비교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무슬림들은 자기들의 구원은 자신의 노력에 달려 있다고 믿는다. 무슬림이 되기 위해서, 개인은 먼저 회개를 해야 하며, 특히 우상숭배에 대하여 회개해야 하고, 그리고 나서 알라 외에 다른 신은 없으며 모하메드는 그의 사자라는 것을 시인해야 한다. 이것을 다 하고 나면, 개인의 구원은 부활의 날에 자신의 죄의 무게가 선행의 무게와 얼마만큼 비교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무슬림들은 자신이 구원될 것이라는 아무런 확신 없이 살다가 죽으며, 죄를 능가할 정도로 선행을 하도록 해야 한다. 그들의 신인 알라는 멀리 떨어져 있으며 개인적인 행복 따위에는 무관심하다. 그들은 용서에 대하여도 거의 알지 못한다. 아마 로마서 10:2-3의 말씀이 그들에게 설명되어야 할 것 같다.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7. 주요 이슬람 종족

  • 데칸 – 1170만 명, 인도
  • 마두라 – 1120만 명, 인도네시아의 마두라와 자바
  • 마카싸르 – 170만 명, 인도네시아의 술라웨시
  • 말레이 – 1200만, 태국과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 모로코계 아랍 – 1100만, 모로코.
  • 미낭카바우 – 700만,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
  • 보스니아인 – 170만, 보스니아.
  • 부긴 – 3100만, 인도네시아의 술라웨시.
  • 소말리 – 1000만,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지부티.
  • 순다 – 2700만, 인도네시아의 자바.
  • 신디 – 1800만, 인도와 파키스탄.
  • 아제르바이잔인 – 1810만, 아제르바이잔과 이란, 터키.
  • 아체 – 310만,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
  • 알제리계 아랍 – 1830만, 알제리와 프랑스.
  • 우즈벡 – 2100만, 중앙아시아와 아프가니스탄.
  • 울로프 – 290만, 세네갈.
  • 위구르 – 760만, 중국 북서부.
  • 투르크 – 4200만, 터키와 독일.
  • 팔레스타인인 – 530만,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요르단, 레바논.
  • 풀라니 – 1500만, 니제르와 말리, 베닌.
  • 하우사 – 2200만, 니제르와 나이지리아.
  • 후이 – 910만, 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