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신학적 도전

  • 이슬람은 기도(‘ibada,slavery)와 무릎의 종교이다.
    무슬림은 하루에 다섯 번 기도하는데 그 때에 하루에 17번 기도문(rak’a)을 반복한다. 그들은 알라앞에 하루에 34번 무릎을 꿇며 알라에게 신앙을 고백한다. 무릎꿇음은 복종과 항복의 뜻을 가진 이슬람에 대한 표현이다. 무슬림은 자유롭지 못하며, 자신을 알라에게 드려야 하며 그의 긍휼에 의해 살어야한다. 그는 알라의 노예이며 재산이다. 형벌이 없이는 결코 이슬람을 떠날 수 없다.
  • 무슬림들은 선한 행위에 의한 그들의 의를 세우는 것을 믿는다.
    이슬람법(Sharia)는 매일 기도와 다른 종교적인 의무를 요구한다. 기도를 하든지 않든지가 무슬림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하는 의무다. 믿음의 고백, 기도, 금식, 종교세 그리고 성지순례는 이슬람에 자기 의인화의 근본적인 기초이다. 축복은 종교적인 행위에서 오며, 종교적인 행위를 할 때는 축복을 기대한다. 구원(khalas)은 쿠란에 한번도 나오지 않는다. 진실한 무슬림은 지옥의 불로부터 구출되기를 소망한다(쿠란 Maryam 19:72). 거룩한 전쟁(jihad)에서 순교한 자(shahid)만이 마지막 심판을 면하며, 전적으로 알라에게 헌신한자만이 낙원으로 소천할 수 있다고 믿는다.
  • 알라는 더 위대하다(Allahu akbar)
    위의 구호는 이슬람의 알라는 인간이 미칠 수 없는 위대한 신임을 의미한다. 그는 유일하며, 멀리있어 알 수 없는 존재이다. 그에대한 매번의 생각은 잘못된 것이며 충분하지도 않다. 알라는 모든 이성위에 멀리 서있으며 한편으로는 알라보다 더 위대한 이성은 없다.그러나 통속적 이슬람은 위의 추상적인 신관보다는 쿠란에서 99개의 아름다운 알라의 이름들을 내세워, 알라는 모든 것을 보며, 들으며, 할수 있다고 믿는다. 알라는 전능하여, 저항할수 없으며, 슈퍼컴퓨터처럼 모든 것을 지휘한다.
  • 알라는 삼위일체가 아니다.
    무하맛은 다신주의와 무자비하게 싸웠다. 그는 기독교인들의 성부,성모,성자을 알고 있었으며(쿠란 al-Nisa 4:171), 성부가 마리아와 동침을 해 예수를 출생했다고 이해했다.
  • 쿠란은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한다.
    무슬림은 성부 하나님을 부인할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도 부인한다. 쿠란에 예수님에대한 묘사가 100구절이 나온다. 예수님이 처녀 미리암(Myriam)에 의해 출생했으며, 이는 하나님의 말씀과 영에 의해 창조된 선지자(쿠란 Maryam 19:35)라고 무하메드는 믿는다. 쿠란은 예수님의 21가지 이름과 성품들을 언급하며, 10가지의 기적들과 예수님의 승천을 두 번 언급한다. 쿠란은 예수님의 성육신과 십자가 희생을 부인하면서, 23번이나 하나님은 아들이 없음을 반복한다.
  • 쿠란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부인한다.
    무슬림들은 알라는 중보자나 화목을 위한 희생제물이 필요없다고 한다. 알라는 전능하기에 질문할 수 없으며, 스스로 원하는 자를 용서할 수 있으며, 원치 않는자를 용서하지 않을 수 있다고 믿는다(쿠란 Fath 48:14). 무하메드과 추종자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죄사함, 세상을 위한 구원을 믿지 않기에 어떤 무슬림도 죄에 대한 용서를 확신하지 않는다. 쿠란에서 알라는 용서자로 111번 나타나는데 명사이지 동사가 아니기에 역사적인 사건이 아닌 이름의 형태라는 것이다.
  • 이슬람의 성령은 신성을 갖지 않는다.
    쿠란에 하나님의 영, 거룩한자의 영은 24번 나오는데 이영은 하나님이 아닌 창조된 영으로 이해된다. 알라는 결코 영이 되지 않기에 거룩한 자에게 순종하는 영으로 이해되는 것이다(쿠란 al-Baqara 2:87,253; al-Ma’ida 5:110; al-Nahl 16:102). 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반드시 거룩할 필요는 없으며 단지 그는 거룩한 자의 소유인 것이다. 이슬람에서 성령은 가브리엘 천사 이해되어지기에 독립된 성령의 존재로나 삶의 열매를 맺게하거나 영생에 대한 확증을 주는 존재로 받아들여지지를 않는다.

II. 윤리적 문제

  • 이슬람에 있어서의 여성지위
    이슬람에 여성지위는 상당히 낮다. 남성에 반정도이다. 법정에서 여성둘의 증거는 남성한명과 같다. 어머니의 유산상속은 아들의 반이며, 어떤 여성도 남자 형제의 반이상을 가질수 없다(쿠란 al-Nasa 4:11). 일부다처제가 허용되며, 남성은 한 여자를 이혼하고 재혼하고를 3번 반복할 수 있다(쿠란 Bukhari, talaq 9:34). 만일 여성이 이혼을 당하여, 딴 남자와 결혼하여 하룻 밤을 자면 그 여자와 재혼할 수 없다. 그러나 결혼한 남자가 그 여자를 놔주면 다시 그 여자를 데려올 수 있다. 또한 남자는 여자를 훈련시킬 권리, 즉 가르치며, 별거시키며, 때릴 권리가 있다(쿠란 al-Nisa 4:34). 여자들도 할례를 요구당하기도하여, 아이를 많이 낳는 의무가 요구된다.
  • 이슬람내에서의 그리스도인과 유대교신자들
    이슬람권에서는 그리스도인들과 유대인들은 법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소외시된다(쿠란 al-Tawba 9:28-29). 그리스도인들은 종교세(jizya)를 내야할 뿐만 아니라 교회건축이나 증축이 허가되지 않는다. 무슬림들을 손님으로 영접해야하고 거리에서 존경을 표시해야 한다. 쿠란을 인용하거나 연구할 수 없으며, 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복종해야한다. 아랍권에 천오백만의 그리스도인들이 무슬림 권력아래 살고 있으며, 모든 이슬람 국가에서 오천만의 그리스도인들이 차등국민의 대우를 받고 있다.
  • 이슬람법은 무슬림문화를 지배한다.
    이슬람권에서 일상생활은 종교법에의해 다스려진다. 이슬람 개혁의 주요 목표는 개인의 믿음이나 인격형성이 아니라 샤리아를 유일의 법으로 강요하는 것이다. 샤리아는 예배의 의무들, 즉 매일 5번 기도, 라마단의 금식, 종교세, 메카의 순례, 할례와 죽은자의 장사를 강요한다. 그리고 일상생활의 의무들 곧 결혼, 상속, 계약, 전쟁, 노예제;도와 형벌등을 강요한다. 샤리아는 양심을 연마하는 도덕성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며, 사건의 동기, 목표, 생각등을 밝히는 것도 아니라 다만 밝혀진 사실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한번 도둑질하면 오른 발을, 두 번 도둑질하면 왼쪽발을 자른다(쿠란 al_Maida 5:38). 간음죄는 등을 100대 때린다. (쿠란 al-Nur 24:2). 타종교로 개종자는 죽일 것을 요구한다(쿠란 Al Imran 3:87). 이슬람의 법의 종교인 것이다.
  • 이슬람의 영은 거짓말을 허락한다.이슬람은 4가지 상황 곧 거룩한 전쟁, 원수가 화해할 때, 남편이 부인들과 대활할 때, 부인이 남편에게 말할 때에 거짓말을 허용한다(쿠란Tirmidhi, birr 26; 쿠란Musnad Ahmad Ibn Hanbal, 6/459,461). 그래서 그런지 무슬림들은 상호간에 신뢰하지 않는다. 정치나 상업에 속임과 음모가 있다. 오로지 씨족만을 신뢰한다. 쿠란은 알라를 말을 만들어내는 자들중에 최고라고 일컫는다(쿠란 Al Imran 3:54). 그렇다면 신자들은 어떻겠는가? 쿠란이 성경을 인용할 때 진리와 상반되는 240번의 실수를 발견한다. 이슬람에는 오십만의 무하맛 전통(Hadith)들이 있는데 그중에 4800개 만이 진실이다. 쿠란 다음가는 경전임에도 불구하고 1%만이 진실인 것이다.

III. 인격적인 상담에 있어서의 기본적인 문제점들

  • 무슬림의 집단적인 사로잡힘
    이슬람은 다른 세계종교들과는 달리 기독교후에 발생했다. 무하맛은 그가 동의하는 부분만을 받아들였으며 60-70$를 왜곡되게 쿠란에 인용했다. 그는 유대교와 기독교로부터 자신이 선지자임을 불신되었으므로 반발심으로 반유대교적, 반기독교적 종교로 발전했다. 그러므로 무슬림들은 반대하는 영에 영향을 받아 집단적으로 사로잡혀있다. 그들은 복음과 구원을, 예수그리스도의 이름과 성령의 능력을 부인한다.
  • 씨족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을 방해한다.
    수천명의 무슬림들이 기독교인이 되기를 원하고 있다. 이슬람국가에서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받기를 두려워하는 가장큰 이유는 같은 씨족, 사회, 국가에서의 박해 때문인 것이다.
  • 무슬림이 기독교인이 되는 것은 먼 안목에서 가능할 것인가?
    이슬람화된 기독교인이 가능할 것인가? 상황화(contextualization)가 가능할 것인가? 카톨릭의 2차 바티칸회의에서 제시된 것을 오늘 날 우리 개신교에서 유행처럼 상용하고 있다. 과거의 무하맛이 기독교도들에게 접촉하기 위해 무슬림과 기독교인들은 같은 하나님을 믿고 있다(쿠란 al-‘Angkabut 29:46)고 하며 접근한 것 처럼 우리가 같은 방법으로 접근하고 있다. 당분간은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에는 부딪칠 수 밖에 없다.
  • 거룩함 없이 어떤 개종자도 주를 볼수 없다(데살로니가전서 4:3,히브리서 12:14).
    무슬림들은 죄와 은혜, 예정, 결혼, 교육, 사업, 정치와 사회등을 이슬람의 문화에 기원해 바라본다. 이런 안목들이 성경에 문화로 거룩하게 되지 않는다면, 주를 만나기 어려울 것이다. 개종자들의 20%는 가족, 친척, 사회로부터 쫓겨나, 집없이 살게된다. 그들은 새로운 영적인 둥지가 필요하다. 영적인 가족이 필요하다.
  • 샤리아는 이슬람내에 어떤 선교도 허락하지 않는다.
    이슬람 국가의 대다수 교회들은 전도하는 것을 고의적으로 삼가며, 때로는 공적으로나 비밀리에 무슬림에게 선교하는 것을 방해한다. 그들은 개종자들을 아주 드믈게 포용한다. 이것은 이슬람의 Ahl alDhimna의 위치로 돌아가는 것이다. 샤리아는 그리스도인들이 전도하지 않는한 존재의 권리를 허락한다. 무슬림이 개종하거나 세례를 받거나 결혼을 하면 위험을 초래하거나 그 단체에 박해를 가하거나 싸움이 일어나서 사라져 버리게 된다. 쿠란에 따르면 어떤이에게 이슬람을 거부하게하는 어떤 선교도 살인보다 더 죄악으로서 간주된다.
  • 새 교회들을 세우는 것
    교회개척은 교회사에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초대교회부터 새로운 교회들을 선교팀들이 세웠다. 카톨릭과 동방정교에서는 수도원들 세우기도 했다. 진젠돌프에 의해 설립된 형제 회중들은 그들 선교팀의 사역을 통해서 장기간의 효과를 가져왔다.이슬람국가에서 아메리카와 한국인의 생활하는 법이나 제자훈련을 하는 것은 무슬림을 멀어지게 하거나 거스리게한다. 이들은 영어에 대한 지식을 늘이거나 유럽과 미국의 장학금이나 비자를 얻기위해 자주 문의하곤 한다. 현지 새로운 교회들이 죽으시고 부활한 구주의 인도아래 성장하고 있는 곳마다 이슬람의 실제적이고 기본적인 문제들이 발생한다. 자만심, 불신, 지나친 민감함, 귀찮아함, 복수, 적응치 못함, 주는 것에 대한 거부감등이다. 이럴 때 이슬람을 향한 참다운 승리는 공동체 생활에서의 예수그리스도의 사랑과 성령의 능력을 통힌 개인들 속에서 시작된다.
  • 종교들간의 혼합주의경향은 무슬림선교를 방해한다.
    미국과 유럽뿐만 아니라 중동지방에서 정치나 교회 그리고 이슬람에서의 증가하는 지도자들의 수는 종교들 사이에 깊은 골을 이을려고 하는 혼합주의적 시도를 추구한다. 그들의 활동들은 환영을 받는다. “종교 사이에 평화가 없이는 사람들 사이에 평화도 없다!”고 선언한다.그들은 십자가에 달린 하나님의 아들을 부인하며 예수님의 지상대사명을 잊어버린다. 그들은 현지 전도자나 외부 선교사들을 사회 봉사 활동으로 회유케 하거나 성공적인 선교사들을 종교경찰에 고발하여 쫓아내기도 한다. 어떤 나라에서의 이런 진보적인 접근법은 이슬람의 근본주의자들 보다 더 많은 어려움을 만들어 낸다. 사랑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진리를 와해시킨다. 이러한 일치운동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나 교회의 성령 안에서의 어떤 근거도 두지 않는다.

IV. 이슬람과 정치적인 도전

  • 진짜 이슬람은 신본적인 국가를 지향한다.
    이슬람은 서양문화로 정의되는 종교가 아니다. 이슬람에 있어서 정치와 종교는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서로 예속된다(쿠란 al-Baqara 2:193). 이슬람은 신본주의적 종교가 아니다. 근본주의자들은 이슬람은 국가 종교, 나라는 이슬람정부인 신정국가체제를 믿는다. 이 신조는 이슬람의 달력을 살펴보면 잘 나타난다. 그 달력은 무하맛의 탄생이나 무하맛의 계시나 메카에서의 이슬람공동체의 창립이나 메카에서의 12년간 박해시절의 첫 무슬림 순교로 시작되지 않는다. 전적인 이슬람은 위의 사건들이 아닌 622년에 메디나에의 이주(Hijra)로 비로서 형성된다. 종교에 기초한 정부는 언제나 이슬람의 목표가 된다. 아야톨라 호메이니는 이슬람 신정정치의 타협하지 않는 해석자였다. 샤리아는 도적적 경전이 아니고 법전이다. 이것을 심기 위해서는 이슬람정부의 권력을 요구한다. 정치적 힘이 있을 때 비로서 가능한 것이다. 샤리아 때문에 샤리아에 기초한 정부가 없이 는 진짜 이슬람은 존재할 수가 없다. 세계의 무슬림들 가운데 약 20-30%는 샤리아와 이슬람정부를 세울려고 노력하는 근본주의자들이다. 온건한 무슬림들은 필요할 경우 무기를 사용해서라도 샤리아를 받아들이는 것을 방해한다(Syria 1982, Algeria 1993).
  • 거룩한 전쟁과 이슬람 선교
    ‘jihad’라는 용어는 원래 ‘거룩한 전쟁’이 아니고 ‘(알라를)열심히 섬기다, 이슬람전파를 위해 최대의 노력을 기울이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모든 무슬림들은 정치, 경제, 교육, 가족 그리고 필요하다면 현대 무기를 사용해서라도 이슬람을 방어하고, 개혁하고, 전파하기위해 노력하도록 부름을 받는다. 이슬람은 신정통치의 세계나 모든 삶의 분야에 신정중심의 문화를 심는 것이기에 이슬람사회의 분출을 위해 거룩한 전쟁도 모든 수단들을 다해 행해져야 한다. 샤리아에 의하면 세계의 사람들을 이슬람권(house of Islam)과 전쟁권(house of war)으로 분류한다. 샤리아에 의해 다스려지지 않는 나라들은 정복되어져야 하기에 이슬람은 단지 자신의 헌신이나 복종이 아닌 알라와 정부에 대한 복종인 것이다. 1973년이래 이슬람의 복고운동은 세가지의 방법, 즉 비이슬람권으로 부터의 영향으로 부터의 이슬람 방어, 온건 무슬림 정부의 개혁, 모든 대륙에 이슬람 세계선교를 제시한다.
  • 비이슬람 영향을 대항하는 이슬람의 방어
    이슬람의 방어는 이슬람의 공동체(Umma)를 기독교나 공산주의 영향으로 부터 피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하자 비자를 거절하거나 축출하는 것을 포함한다. 평신도 선교사로 전도하는 것이 발각되면 사형에 처한다는 편지를 발송하거나 거짓으로 고발하여 감옥에 넣기도한다. 어떤 국가에서는 외국 전문취업자들에게 복음전하는 어떤 행위에도 참석하지 않는다는 서명을 하게한다. 이슬람나라들의 현지 그리스도인들은 무슬림들에게 전도하는 것을 엄하게 금한다. 만일 계속 전도한다면 위협하고, 때리고, 감옥에 집어넣고, 사형에 처하기도 한다. 교회들을 자주 불지른다. 예배당 수리하는 것도 자유롭지를 못해, 낡은 예배당 안에서만 예배드리는 것을 허용한다.
  • 이슬람의 개혁
    1973년에 기름값이 상승했을 때 이슬름의 르네상스가 정착될 수 있었다. 모든 생활의 분야에서의 일반적인 이슬람화에 부가해 샤리아를 국가의 법으로 소개하며 제정할려고 하는 근본주의자들의 개혁추구가 상승되었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자유를 추구하는 진보적 무슬림이 대다수인 이슬람 국가들은 민주주의와 자유를 선호하여 모든 수단을 다해 샤리아 제정을 막고 있다. 아마도 무슬림의 1/3은 샤리아를 요구한다.
  • 세계적 이슬람선교
    1973년 이래 모든 대륙을 향한 이슬람 선교는 샹승된 기름값으로 인한 이익으로 인해 후원되었으며 확장되었다. 석유돈에 의해 많은 대륙에 서양의 회사나 은행에 재정적인 침투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 빚을 지불하는 것이 수세대에 걸쳐 이행되었다.무슬림 학생들이나 일꾼들이 사는 곳마다 모스크를 세울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와 아시아안에 군소의 많은 쿠란 학교에서 아랍어를 공부하는 것이 널리 퍼지고, 서양과 동양의 문화 센터에 이슬람대학건물들을 세우는 것등이 모든 대륙에서의 이슬람의 잔보를 보여준다. 텔레비젼과 라디오를 통한 이슬람의 침투가 열려져 있다. 사제들과 정치인들의 모임과 대학, 감옥에서의 기도가 증가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과 혼합 결혼도 한 전략이다. 백만명 이상의 그리스도인들이 이미 무슬림들과 결혼했다. 무슬림 해외 거주자들과 학생들은 그리스도인?을 개종하도록 훈련을 받는다. 기독교 나라들에서 자유주의 그리스도인들 뿐만 아니라 이슬람 국가의 동방정교 교인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것이 증가하고 있다. 이집트안에서 일년에 만명 이상의 콥트인들이 돈 때문에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있다. 독일에서도 6만명 이상이 이슬람으로 개종했으며 모로코의 대사였던 호프만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텔레비젼이나 공적인 장소에서 이슬람을 변호하고 있다.
  • 거룩한 전쟁의 다른 방법들
    이슬람의 거룩한 전쟁은 많은 얼굴을 갖는다. 무슬림이 소수인 곳에서는 양의 가죽을 쓰고 있다가 압도하게 되면 진짜 얼굴을 내민다. 그때에 비 이슬람이 소수가 되거나 힘이 없으면 샤리아를 국가의 법으로 제정한다(쿠란 al-Tawba 9:28-29).무기를 들고 싸우라는 것이 쿠란에 16번이나 명령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 외부 공격으로부터 이슬람을 보호하기 위해(쿠란 al-Baqara 2:190-191; al-Hji 2239) 모든 비이슬람을 정복하기 위해(쿠란 al-Nisa 4:76,89,91) 이슬람을 떠나는 자들을 응징하기 위해(쿠란 Al Imran 3:89)알라의 이름으로 계획된 살인이나 인질들을 사로잡는 테러도 문이 열려있다. 살인도 쿠란 Sura al-Anfal 8:17에서 용인한다. “네가 죽인 것이 아니라 알라가 그들을 죽인 것이다. 네가 쏜 것이 아니라 알라가 쏘았다.
    • “거룩한 전쟁에서 비 무슬림들에게 어떠한 속임수나 거짓말도 허용된다. 무하맛 자신도 여러번 “거룩한 전쟁은 속임수다”고 여러번 언급했다(Hadith). 그러므로 우리는 무슬림들의 대화나 강의등을 조심스럽게 살펴야 한다. 무슬림은 진리가 척도가 되지 않으며 오히려 승리와 정복을 위해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