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세계적으로 이슬람의 영향력이 증가하고 이슬람 이미지가 퍼지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인구 조밀 지역인 나이지리아 9개 주에서 이슬람법(Sharia)을 받아들였다. 이슬람의 신앙심 표현이 공개적으로 이루어지고 헌신적인 공중 기도 모습이 신앙에 충실함으로 보여진다.

개인이나 가족간이나 그들 신앙의 중심은 신-인 예수 그리스도에 있으며 신앙과 영적인 지침도 하나의 책에서 찾을 수 있다. 즉 성경이다. 성경 중에서도 산상수훈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 성경을 통독한 어느 자바인은 산상수훈에서 큰 감동을 받고 “그리스도인의 삶이 이러하다면 나는 그리스도인이 되길 원한다”고 했다.

급성장하는 종교

이슬람은 통계 숫자적으로 볼 때(2006년) 기독교보다 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슬람의 연 평균 성장률은 2.15%로 기독교의 1.45%보다 높다. 그러나 이를 자세히 분석해 보면 이슬람의 성장은 96%가 자연적 성장에 의한 것이다. 즉 무슬림 가족에서 태어난 자녀들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인구 성장이 느리거나 멈춘 지역으로 분산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슬람이 기독교보다 더 빠르게 성장하는 것처럼 보여지는 경향이 있다. 개종자의 증가는 조용히 일어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세계 기독교 백과사전” 2000년도 판에 의하면 매해 950,000명이 타종교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하였으나 반면에 2,700,000명이 기독교로 개종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리스도를 믿을 때 지불해야 할 값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대가는 중하다. 하나님의 영은 그를 따르는 이들에게 그 대가를 지불하여 주는가? 그 값에 관심도 없는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은 실제로 간단하다. 선교사와 예수님께 헌신한 사람들을 보면 된다.

지난 10년 동안 훌러신학교 세계선교대학 조사에 의하면 학생들 중 약 6,000명이 무슬림 배경에서 신자 된 분들이었음이 밝혀졌다. 이들 중 39개국에서 50개 인종집단 출신 120명을 표본 조사해 보았다. 그들은 선교사들에 의해 이슬람에서 그리스도에게로 전향한 사람들이었음이 밝혀졌으며, 대부분의 경우는 성령의 감동으로 경외감을 가지고 십자가 신앙과 부활하신 구세주 신앙을 가지게 되었다고 보고하였다. 이 보고서를 정리하면 개종자들의 심령 속에 들려온 음성이 있었다. 왜 그들과 접하면 안 되는가? 왜 그들과 접하지 말라고 하는가? 개종자들의 대부분이 이러한 상호 연관된 작용이 회심의 중요 요인이었음이 밝혀졌다.

1. 구원의 확신

이들이 처음 접하게 된 동기는 인간존재에 대한 관심에 있었다. 천국의 소망을 동경하는 이들이 인간의 영원한 운명에 관해 질문하였고, 자신의 죄에서 구원받는 확실한 지식을 원하는 이들이었다. 코란은 구원에 대해 “의를 행하는 믿는 자들이 영원히 거할 낙원에 속한 자들이다” 라고 했다(쿠란 2:75). 그러나 신께서는 그의 의지대로 용서하시고 그의 뜻대로 징벌하신다 했다(쿠란 2:284). 그러므로 실제로 구원의 소망은 가장 헌신적인 무슬림들까지도 애매모호한 상태이다.

어느 인도네시아 여성은 머리카락처럼 가느다란 것이 낙원에 이르는 다리라고 이슬람 가정 교육을 받았다. 이런 교훈은 모하메드의 교훈(하디쓰)과 실천집에서도 볼 수 있다. 그녀는 선한 행동도 낙원으로 안전하게 건너게 하는데 확실치 않다고 배웠다. 머리카락처럼 가는 다리로는 건너가기에 어렵고 위험하다고 여겼다. 그녀는 여기에서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믿음의 핵심에 이르렀다. 그 자신이 구원 할 수 없으나 오직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믿음의 핵심에 이르게 되었다.

서아프리카의 한 여성은 자신의 죄가 용서받고 깨끗이 씻겨지는 회개에 대해 알기 원했다. 페르시아에서 미국에 이르렀을 때 그리스도께서 두려움에서 자유케 하시는가? 라고 물었고, “오, 그렇습니다. 나는 용서받았음을 믿습니다. 더욱 용서의 확신을 가졌습니다” 라고 고백하였다. 이들은 그리스도께서 영원하심을 믿고 안전한 피난처임을 알았다. 어느 이집트인은 무슬림에게 기독교의 매력은 구원의 확신에 있다고 노골적으로 말하였다. 자바인도 “내가 예수를 영접한 후 나는 내 생명의 종말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고 분명하게 말하였다.

2. 예수

모든 무슬림 개종자들이 새롭게 발견한 믿음의 중심은 그리스도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성품은 무슬림들에게 압도적인 매력을 주고 있다. 미국으로 이민 온 한 파키스탄인은 박해 받을 때 보복을 거절하신 그리스도에 특별한 매력을 가졌다. 이 사람은 “그는 참고 보복하지 않았다”고 설명하였다.

무슬림들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으셨다고 믿고 있지만(쿠란 4:157-159) 쿠란은 분명히 그를 죽이려는 그의 적대자들을 용서하고 기꺼이 죽음에 이르렀다고 했다.

기독교에 접하기 전 그리스도에 대해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하는 어느 페르시아인의 고백은 무슬림들에게 이상한 것도 아니다. 그리스도는 이슬람에서도 예언자로 존경받고 있기 때문이다(쿠란 19:30-31).

어느 아프리카인은 그리스도의 겸손에 이끌렸고, 그리스도는 죄로 부패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고 했다. 더 설명치 않더라도 그리스도께서 코란에 흠 없는 분으로 묘사됨에서도 알 수 있다(쿠란 19:19). 반면에 모하메드는 죄 용서함을 구하라고 하였다(쿠란 40:55/57, 47:19/21, 48:2). 기독교의 독특한 교훈에 매료된 한 이집트인은 “십자가에 못 박힌 메시야” 라고 고백하였다.

2. 거룩한 책: 성경의 권능

무슬림들도 토라, 시편, 복음서(일반적으로 신약성서로 이해됨)를 거룩한 책으로 존중하고 있다. 성서에 거부감 가지는 이들이라도 그들이 한 번은 읽어야 할 거룩한 책으로 여기고 있다. 한 레바논의 무슬림은 그리스도의 산상수훈이 그의 회심(개종)에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고 했다.

어느 북 아프리카 신자는 가난한 자들과 학대받는 자들, 버림받은 자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에 접하여 회심케 되었다고 했다. 어떤 이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성격에 끌리게 되었는데 그리스도인들의 가난하고 억눌린 이들을 위한 정의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결국 성경에서 발견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진리이다. 성경을 탐구한 어느 파키스탄 신자는 그가 가지고 있던 많은 의문에 대한 답변을 성경에서 찾았다. 성경에 대한 이해가 더 할수록 그는 성경이 부패되었다고 가르친 사람들에게 속았음을 알았다. 어느 북 아프리카 사람은 성경의 교훈에서 진리를 찾았고 지적으로도 만족한다고 했다. 그리스도를 믿게 된 어느 이집트 사람은 성경이 하나님의 참된 성품을 아는데 도움을 주었고 알고 믿게 되었다고 했다. 어느 이란인도 “성경은 합리적이며 문화적인 장벽이 없다”라고 말했다.

3. 꿈과 환상

무슬림 배경을 가진 그리스도 신자들은 드러낼 수 없는 이의 놀라운 역할에 대해 말하고 있다. 대부분의 서양 사람들은 꿈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1/4이넘는 사람들이 꿈에 의해 인도되고 꿈에서 조용히 힘을 얻었다. 리크 러브는(프런티어선교회 대표) “하나님께서 바울 사도를 변화시키실 때 꿈과 환상을 사용하였듯이 지금도 무슬림들에게 꿈과 환상을 보여 주신다. 또한 하나님께서 고넬료에게 환상을 통해 복음을 듣게 하신 것과 같이 무슬림들에게 그의 복음에 응답토록 다양한 것을 준비하신다”고 말했다.

어느 기니아에서 온 신자는 꿈에 본 사람이 그리스도임을 믿었다. 그 분은 흰 가운을 입었고 무슬림 가운데서 활동하고 계셨으며 자신을 오라고 손짓하며 부르는 꿈을 꾸었다. 다양한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 흰 옷 입은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신 꿈과 환상을 회상하였다. 어느 한 말레이 여성도 이와 유사한 꿈을 꾸었다. 세상 떠난 그녀의 부모님이 그리스도인인 환상이었다. 그녀는 그들이 천국에서 다른 이들과 함께 즐거워함을 보았고 예수님이 흰 옷을 입고 나타나셔서 “네가 나에게 오길 원하면 지금 오너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녀는 아무 공로없이 구원하시는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간증하였다.

두통으로 고통받는 한 중동의 무슬림은 그의 병든 아들을 위해 기도한 후 침대에 누웠을 때 한 아름다운 사람이 평화스런 얼굴로 나타났다. 흰옷을 입었고 자신의 침대 머리 곁을 거니시며 세 번 자신의 머리에 손을 대시었다. 다음날 아침 그의 두통은 사라졌고 그의 아들도 완전히 치료되어 있었다. 그는 확신을 가지고 “나는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함을 믿습니다” 라고 외쳤다.

꿈을 통해 그리스도를 만난 많은 사람들은 두 부류 중 하나이다. 첫째는 꿈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다. 흰 옷 입고 나타나신 이를 그리스도나 크리스천 신앙을 가진 이라고 여긴 것이다. 둘째는 꿈에 권능을 부여한 이들이다. 꿈과 환상은 일반적으로 박해에 직면한 이들에게 힘을 주는 요인이 되었다. 박해의 순간 담대해지고 증인으로 힘을 얻은 것이다.

  • 예비하심
    • 어느 수니파 여성은 아라비아 반도에서 온 분인데 꿈에 한 사람이 나타나서 그녀가 알고 있는 그리스도인 여성을 찾아가라고 말했다. 그녀가 그리스도인 여성을 찾아갔으며 꿈에 나타난 사람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가르쳐 주었을 때 확신하고 그리스도를 영접하였다.
      개종하기 전, 어느 페르시안 남성은 환상을 보았는데 그가 어둠 속에 빠져서 헤맬 때 그의 뒤에서 빛으로 구원해 주신 것이다. 그는 즉시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개종하였다.
    • 하나님께서는 꿈과 환상을 통해 역사하고 계신다. 한 알제리 사람은 잠든 사이에 무슬림 할머니가 나타나 “예수님은 죽지 않았어, 나는 네게 말하는데 그 분이 여기 있기를 원한다” 하는 말을 분명히 들었다고 했다.
    • 어느 아프리카 사람은 개종하기 전에 본 환상을 분명히 말하였다. 그는 열성적이고 헌신적인 무슬림이 지옥에 있었고, 가난한 그리스도인이 천국에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으라는 소리를 들었다.
  • 권능을 부어 주심
    • 어느 북아프리카 신자는 감옥에서 힘이 빠져 있을 때 꿈을 꾸었는데 꿈에서 엄하게 막고 있는 그의 나라에서 수많은 신자들이 그의 도시 거리에서 거침없이 공개적으로 신앙을 전파하고 있는 것을 보았고 신자들이 흘러 넘치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감옥에 있는 동안 극심한 고문을 받았다. 벌거벗겨져 매달렸고 전기 봉으로 구타당하였으며 거듭거듭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그는 그의 나라 사람들이 거리에서 믿음을 공개적으로 선포하는 환상을 보고 큰 힘을 얻었고 극심한 고난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 초자연적인 현상
    • 꿈이나 환상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무슬림 배경을 가진 신자들 중 많은 분들이 예수님과 초자연적인 만남을 체험하였다. 어느 한 이집트 무슬림은 복음서를 읽던 중에 성령이 비둘기 같은 모습으로 예수님께 임하는 누가복음 3장에서 하나님이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눅 3:22) 하신 말씀을 읽었다. 이때 폭풍 같은 바람이 그의 방안에 몰아쳐 왔고, “나는 네가 증오하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나는 너를 찾고 있는 중이다” 라는 음성을 들었다. 그는 즉시 예수님을 영접하였고 “영접하는 순간 울고 또 울었다”고 회상하였다.

이러한 개인적인 투시를 받은 이들은 꿈과 환상을 보았고 그리스도인의 길을 가며 무슬림들에게 전도하는 사역을 감당할 때 어떠한 어려움도 이길 수 있는 힘이 그리스도와 만남의 체험에 있었다.

4.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수많은 무슬림들이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오는 중요한 요인은 사랑의 힘에 있었다. 무슬림 배경에서 신자가 된 사람들도 사도 바울처럼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임을 깨달은 것이다. 믿음을 가지게 된 무슬림들의 상당수가 하나님의 사랑이 결심하게 된 핵심이었다고 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것으로 나의 제자임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랑의 매력은 두 가지 부수적인 범주를 갖는다. 첫째는 사랑의 실례이다. 어느 한 요르단 신자는 그의 회심이 그리스도인 친구에게서 본 ‘사랑과 평화와 만족의 발로’에 있었다고 했다. 프랑스로 이주해 온 아랍 여성은 그녀의 친구의 따뜻한 친절에 대해 말하면서 “그들은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발하였다”고 했다. 그녀보다 먼저 이주해 온 친구들이 하나님께서 일터를 구하는 기도에 응답해 주시기를 기도하였다. 그녀는 친구들이 ‘주님께 응답받을 때까지 계속 기도’ 하는데 놀랐다고 말했다.

젊은 수니파 무슬림 여성은 친절을 보고 믿음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과 사귀게 되었고, 친밀함 속에서 하나님을 믿고 영생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했다. 신자들에 의해 표현되는 사랑을 성서의 증언, 즉 사랑의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과 구분하는 것은 어렵다.

하나님의 사랑. 둘째는 하나님에 의해 직접 사랑을 체험하는 것으로 성서에 증거가 있다. 어느 한 벵갈인은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이 그리스도의 그 크신 희생으로 자신의 죄가 정복되었다”고 고백하였다. 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데 무력함을 깨달았고,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에 돌을 던졌으나 그리스도 안에 새 생명이 있음을 믿는다고 고백하였다.

하나님의 사랑은 다른 무슬림에게 억압을 받고 있는 무슬림들에게 특히 감동적이다. 어느 한 시아파 무슬림이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사랑하신다”는 진리에 매료되었고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보호와 사랑을 받고 있음에 이끌렸다. 이런 비슷한 일이 서아프리카 사람에게도 있다. “적까지 포함하여 모든 인종의 사람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감동받았다. 이슬람에서 체험한 것은 아랍 무슬림들이 흑인 아프리카인에 대해 인종적 우월주의자란 것이다” 라고 말하면서, “이슬람은 아랍인들이 비아랍인들을 압박하는 도구”라 강조하여 말하였다.

5. 하나님과 교제함

  • 나는 너를 친구라 부른다
    • 무슬림 배경을 가진 신자의 약 10%는 하나님과 교제함에 매료된 이들로 그들의 개종에 중요한 요인이었다. 알제리아인 이주자는 그가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하나님이 친구가 되시고 아버지가 되신다 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점은 북아프리카인 개종자로 하나님과 직접 교제함을 가질 기회를 가진데 있었다. 그가 이슬람에서 만족치 못한 것은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없고 동행할 수 없다는 데 있었다. 그는 주님과 사람들 사이에 직접 교제를 갖는다는데 큰 매력을 느꼈다. 이점에서 가려진 베일이 벗겨진 것이다.
    • 어느 한 이집트 신자는 두 가지 이유에서 기독교에 이끌렸다고 했다. 즉 하나님의 아들과 자신 안에 거하시는 성령 때문이다. 이런 점은 인도네시아 개종자도 고백하였다. 이슬람을 부정한 이유는 “하나님은 보편적이나 가족이 없다.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길이 없다”는데 있었다.
    • 북아메리카 복음주의는 개인적이고 체험적인 것을 너무 강조함을 비판하여 왔다. 그러나 무슬림 배경을 가진 신자들과 교제하며 그들의 증언에서 보면 하나님을 체험하고 교제하는 것이 중요하였음을 알 수 있다. 무슬림 배경의 신자들에게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신적 연애라고 말하는 보편적 호소일 것이다. 즉 그리스도의 교회를 향한 사랑과 그가 자신의 것이라고 부르시는 자들과 함께 교제하고자 하는 바람이다.

6. 복 있는 자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

팔복의 말씀은 삶 속에서 복된 삶을 실현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팔복의 말씀을 해석상의 문제로 보고 가볍게 여기지 않는가? 실제로 무슬림권 신앙인들은 서구 세계인들보다 더 많이 박해받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어느 서아프리카인 신자는 자신의 가족들에 의해 찔리고 불태움을 당했다. 그러나 그는 죽지 않았다. 그의 가족은 그가 죽었다고 여겼다. 신체적 고난이 심했으나 그가 죽었다고 여긴 사람들이 준 심리적 상처들은 과소 평가되었다. 어느 북아프리카인은 그가 배척받고 구타당하고 집을 잃는 것이 얼마나 상처가 되었는지 과장하여 말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애석하게도 국내 교회마저 그를 인정치 않았다.

어느 한 레바논 무슬림은 회심 이후 그의 교수직 및 전문직 모두를 상실하였고 결국에는 살해되었다. 존경받는 전문인들이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결심한 결과로 경멸받는 위치로 전락하였다. 북아프리카인의 체험적인 고백에 의하면 정신적 충격은 이틀 동안 경찰에 체포되어 심문 받는 중에 일어났다. 그들은 인종 중심주의에 근거를 두고 박해한 사람들로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한 사람들에게 뒤따르는 극심한 박해는 끔찍하다고 했다.

북아프리카인은 비인종주의자인 그리스도인으로 극심한 박해를 받았고, 관계가 끊어진 친구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어느 한 서아프리카인은 그의 집이 방화되었고 그와 가족들을 죽이려는 사람들의 추격을 받았다.

필리핀의 한 어부는 박해에 대하여 증언하였다. 그의 배를 빼앗아 갔고, 그물을 절단하였으며, 그의 자녀들을 괴롭혔다. 하지만 한 목격자는 “그는 요동하지 않았다” 라고 말했다.

이러한 박해에 직면해서도 확고부동한 것은 박해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박해는 영적인 성장을 촉발하고 장성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한 것 같다. 박해에 직면하면 성경말씀의 위로가 더 깊은 도움을 주고 있다. 자바인 형제는 박해에 직면하여서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마 5:11)란 말씀에 용기를 얻었다. 그리스도의 교훈은 그의 방향을 새롭게 하였고, 오히려 축복받은 것으로 여기기 시작하였다.

어느 한 이집트 신자는 죽음의 위협으로 고통 받고 있을 때, 성경말씀을 통해 위로를 받았다. 조롱하는 자들이 그의 동생에게 신앙이 없는 이단자라 했으나 그는 복음서를 읽을 때 하나님의 사랑을 느꼈고, 예수님이 임재하고 계심을 깨달았다. 코란에서와 달리 그는 복음서의 권능을 체험하였고 오히려 감사하였다.

7.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때

이러한 신앙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은 극적인 순간에 함께 계시며, 인간 삶 속에 활동하고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손길이 무슬림들에게 뻗치고 있으나 우리는 우리의 잘못됨을 때론 알지 못한다. 무슬림들에게 사랑과 구원의 은혜를 전해 주어야 할 복음의 빚이 우리에게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따르려 찾고 있다. 진실함이 진리를 위한 잣대가 아니다. 믿음의 진실함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생명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

복음의 능력을 인격적으로 분명하게 표현하고 드러내는 그리스도를 위한 증거자들이 부족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꿈과 환상을 사용하시는 듯하다. 다른 방도가 없다고 해도 그리스도를 위한 증거자들의 앞의 증거들은 하나님이 일하고 계심을 보여준다.

분명한 것은 무슬림들이 모든 것에 충만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면 그들은 그리스도와 삶이 매력적임을 발견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은혜에 저항할 수 없는 요소가 있는 것이다.(출처 : J 더블리 우드베리, 전 훌러신학교 세계선교대학의 학장, 바울선교 99호)♡

(from : missionmagazin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