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그러나 사탄이 아담아 내가 너를 영생의 나무와 불멸의 왕국으로 안내하여 주리요라고 속삭였다. 그렇게 하여 그들이 그것을 먹으매 그들의 벌거멋음이 그들에게 나타났더라. 그러자 그들은 천국의 나무 잎으로 그곳을 가리기 시작했고 아담은 그의 주님의 명령을 배반했으니 그는 방황하게 되었더라.”(수라 20:120-121)
(코란, 의미의 한국어 번역 / 파하드 국왕(사우디 아라비아) 꾸란 출판청)

 

 

관점
알라는 아담과 그의 부인에게 파라다이스에서 살며, 그곳에서 자라는 무엇이든지 먹고 싶은대로 먹으로 살라고 말했었다. 그러나 알라는 한 가지를 특별하게 먹지 말라고 명령했다. 사탄은 아담과 그의 부인에게 결코 망하지 않는 왕국에서 영원토록 살 수 있다며속삭였다. 사탄의 속임수였고, 아담과 그의 부인은 그 나무의 열매를 맛 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벗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알라는 그들을 불러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를 물었다. 그들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 졌으며, 이들의 영혼은 스스로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 그들은 알라에게 자비를 간청했고, 알라는 이들을 시간이 존재하는 세상으로 내려 보냈다. 그리고 그들을 인도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탄으로 말미암아 상처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이제부터는 반드시 알라에게 복종함으로 얻는 선함(죄가 없음)으로 옷을 입어야 했다. 오직 이 방법만이 이들이 죽음 훙에 다시 파라다이스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기독교인의 관점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아담을 먼저 지으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은 아담을 자신의 형상과 같이 만들었으며 전 세계를 다스리는 권한을 주셨다. 에덴동산 역시 하나님의 창조시하시고 아담이 다스리는 세계의 한 부분이었다(그러나 코란에서는 에덴동산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하나님은 아담과 이브에게 선과 악을 분별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사단은 이브를 유혹해 그 나무의 열매를 먹게 마들엇다. 그러나 아담은 함께 있지 않았었다. 그러나 아담 역시 이브가 건네주는 열매가 하나님이 금지하신 열매라는 것을 알았음에도 그것을 받아 먹었다.

그러자 그들은 자신들의 벗은 상태를 인식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저녁 에덴동산을 걷다가 아담을 불렀다. 아담은 이브를 핑계댔고 이브는 다시 사탄을 핑계댔다. 하나님은 심판과 벌을 자신의 창조물에 내리셨다. 이브는 아이를 낳는 고통을, 그리고 남자를 지배하려는 욕망을, 아담에게는 하나님의 전체 창조 속에서 죽음, 잡초, 부패, 고된 일을 받았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담과 이브를 에덴동산 밖으로 쫓아 내셨다.

죄의 성질과 결과
이슬람의 관점
이슬람에서 죄는 법을 어긴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마음의 부패 혹은 잘못된 마음의 문제는 아니다. 아담의 죄는 전 세계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아담과 그의 부인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심판은 죽음 뿐이었다. 그러나 아담의 후손들은 단순히 복종에 대한 시험을 받는다. 대부분의 생각에 따르면 사람은 태어나기 전에는 아무런 죄 의식을 갖지 않는다. 이슬람법(Sharia)와 이슬람 법이론(Fiqh)는 법률위반을 판단한다. 사람은 나약하게 창조되었고 실패와 잘못을 저지른다고 믿는다.

알라는 모든 삶의 장면, 범죄, 사회, 시민 그리고 종교법에 대한 청사진을 갖고 있으며, 이러한 계획에서 이탈은 죄이며 사회, 관계, 통상, 문화에 실패를 가져온다. 영원한 죄는 이슬람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 이슬람을 배교한 사람들만이 갖게 된다고 믿는다.

파라다이스의 죄에 대한 구절들

  1. sayyia, khatia: 실수들 (수라 7:168; 17:31; 40:45; 47:19 48:2)
  2. itada, junah, dhanb: 부도덕 (수라 2:190,229; 17:17 33:55)
  3. haram: 부패 (수라 5:4; 6:146)
  4. ithm, dhulam, fujur, su, fasad, fisk, kufr: 사악과 악행 (수라 2:99, 205; 4:50,
    112, 123, 136; 12:79; 38:62; 82:14)
  5. shirk: 우상숭배 (수라 4:48)

일반적으로 무슬림은 위의 죄들로부터 알라의 보호를 받으나 비무슬림들에게는 제공되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러나 모든 죄에 대한 심판이 있다. 코란과 하디스(무하메드의 언행록)에는 이들 심판에 대하여 많은 구절들이 있다. 무슬림은 알라가 우상숭배죄를 제외한 자신들의 모든 죄를 용서할 것이라고 소망한다.

기독교의 관점
기독교는 이 세상은 완벽하게 창조되었으나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고통, 죽음, 부패, 질병 그리고 부정으로 바뀌었다고 믿는다. 인간은 아름답게 창조되었다. 그러나 부패되었다. 물론 죽음을 맞이하는 육체 뿐만 아니라 어둠, 자기 정당화 악함 으로 바뀐 마음, 영혼까지도 부패되었다고 믿는다. 죄는 단지 법을 어긴 행위일 뿐 아니라 삶과 창조의 부패이다. 누구든지 죄와 사악함을 빠지는 것은 영향을 받지 않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죄는 타락, 노예됨, 변절, 부패 그리고 종국에는 살인이다. 왜냐하면 아담과 이브는 사단의 말을 들음으로 자신들을 죄의 힘 아래 종으로 만들었다. 따라서 그들의 이기적은 욕망은 하나님과의 관계로부터의 자유롭고 열린 관계를 단절시켰다. 하나님은 자신이 자신의 친구요 자식으로 자신의 형상과 같이 창조햇던 그들에게 더 이상 관용을 배풀 수 없었다.

아담의 죄는 단지 하나님의 명령에 불복종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아담을 부르셨다. 왜냐하면 그분이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은 깨진 관계였기 때문이었다. 이전에 친구였던 아담이 몸을 숨긴 것은 아담에 의해 관계가 손상되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아담은 에덴동산으로 내려와 자신과 함께 걸으며 말씀을 나누셨던 하나님을 배신했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과 지신을 창조하심 하나님과의 신뢰와 친밀함은 단순히 ‘죄 용서’라는 단어 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이었다. 친구관계의 상처는 언제나 깊게 남게되며 회복하기 어렵다. 타락과 하나님으로부터의 떠남은 아담의 모슨 후손들, 오날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성경은 또한 하나님은자신이 사랑하는 인간을 다시 자신과의 관계로 돌이키기 위한 여러가지 방법을 나타내 보여주고 있다.

죄의 문제에 대한 해답
이슬람에서 죄 혹은 실수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알라와 인간과의 관계는 주인과 종의 관계로 종은 불족종한 후에 다시 일터로 보내졌다. 왜냐하면 죄는 단순히 불복종이었기 때문이지 창조주와의 완전한 분리가 아니었다. 이슬람은 타락과 죄의 결과로 말미암은 단절이 없다.

기독교에서 죄는 인간성을 떠나 전체 우주적으로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하나님과의 관계의 단절은 단순한 불복종 이상의 문제이다. 이것은 삶, 건강, 활력, 평화, 기쁨, 안전 그리고 행복으로부터의 단절이다.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을 때 그들의 친구가 아닌 사탄이 다가왔다. 죄는 우주의 안전성을 회손 시켰다. 처음 하나님과 아담은 완벽한 친밀한 관계 속에서 함께 걸으며 대화를 나누었다(창세기 3:8-9). 그러나 아담과 이브가 죄를 범한 후 이 관계는 손상당했다. 아담과 이브는 더 이상 하나님과 함께 걸으면서 대화를 나눌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당했다.

그들의 친구, 창조자로부터의 단절은 인간은 자신들의 성실함으로 그것을 회복 시킬 수 없다. 따라서 죽음, 타락, 이기심, 질병, 고통, 아픔에 빠지게 되었다. 왜냐하면 모든 죄의 삶은 기대하지 않은 죽음, 부패로 이끌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분리를 낳은 죄에 대한 유일한 해결 방법은 모든 것의 죽음과 새로운 인간이 되며 새로운 우주가 되는 것이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죄의 목표는 죽음과 지옥임을 보여주고 있다.

신약에서 우리는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역사적인 삶, 동정녀 Mary를 통해 태어난 그리고 하나님의 영을 통해 아버지 하나님과 완벽한 친밀한 삶을 사셨던 하나님을 발견한다. 예수님께서 죽었을 때 그는 온 세계를 자신의 죽음 속에 함께 넣으셨다. 그는 죄의 결과인 모든 죽음, 타락을 짊어지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셨다. 그러나 그분, 예수님이 죽음에서 살아 나셨을 때 그는 이전의 그가 아니었다. 그분은 훨씬 능력있는 새로운 몸을 지니셨고, 이전의 과거의 몸보다 훨씬 제한되지 않는 몸을 지니셨다.

관계의 회복
예수님의 부활 속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인간의 삶은 하나님과 친밀한 완전한 모습이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죄에 대한 문제가 해결된 것이며,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한 하나님과의 끊어졌던 관계가 다시 회복되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삶에는 아담과 그의 모든 후손들의 죄는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는 보다 나은 인간으로 창조하셨고 보다 영광스러운 세상을 만드셨다. 예를 들어 한 살인자가 어린 아이를 살해했다면, 다른 잘못이 없다하더라고 살인자가 어린아이를 다시 되 살려 내기까지 화해란 있을 수 없다.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새로운 삶을 부여 받은 사람들이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하나님의 영이 부활하신 예수님의 영과 같은 새로운 영을 부여 받게 된다. 세상 속에서 외면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과 소원해져 있다. 아직 내면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보이지 않는 것이 드러나게 될 새로운 창조와 새로운 세계의 한 부분이 되어 있다. 외면적으로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썩어져 있다. 그러나 내면적으로는 살아 계신 하나님과 관계가 친밀하게 새로워지는 것을 통해 매일 매일 강하게 자라고 있다. 왜냐하면 거룩하신 하나님과 친구관계를 회복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은 거룩, 비이기적임, 하나님을 기쁘시게하는 방법으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 따르면 좋은 행동은 사람이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회복한 후에 따라온다. 그러나 그 이전에는 불가능하다.

결론
이슬람에서 죄와 잘못은 중요한 부분이 되지 않으며, 이는 단지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 이슬람은 알라의 의지에 대한 복종을 의미한다. 과거의 죄에 대하 문제는 현재 알라의 으지에 대한 순종을 해결된다. 왜냐하면 이슬람에서는 알라과 그의 창조물과의 어떤 친밀함도 없기 때문이다. 알라는 인간의 관계와 연합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으며, 알라는 단지 세상에서 인간들의 자신의 의지에 대한 순종 여부에 관심을 갖고 있을 뿐이다.

기독교에서 죄는 기독교 가르침의 중심이다. 복음은 예수님의 출생, 삶, 죽음, 그리고 승천을 통한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과거 죄에 대한 문제, 궁극적으로는 아담의 죄, 는 현재의 선한 행동을 통해 해결 할 수 없다. 죄의 피해가 이미 아담을 통해 발생했으며, 하나님과의 분리가 이미 발행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은 법률적이 목록이 아니다. 그러나 에덴동산에서 깨졌던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으로 초대하는 유일한 초청이다.